[울산의설화#5]김취려와 송대리 능골 이야기
즐기 GO/울산웹툰2014. 6. 26. 08:45


"어머니 꼭 성공해서 돌아올게요."

 

"그래. 멀리. 멀리 가거라. 그래야 고생을 덜한 대. 멀리. 멀리 가거라."

 

 

 한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어요. 봇짐을 한가득 짊어진 아들은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겠지요.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발길이 가벼울 아들은 세상천지에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죠. 아들을 다그치듯 몰아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짐작되지요. 멀리 떠나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지요. 잘 키운 내 아들을 곁에 두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인 어머니이지만 아들의 장래를 위해 떠나보내고 있지요. 성공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요.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모자가 슬픈 이별을 하는 이곳은 언양의 송대리 능골이에요. 풍수 지리적으로 이곳은 등잔혈에 해당하는 지역이래요.

 

 


 등잔 밑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으니 보살피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조상이 보살펴주려고 해도 가까이 사는 후손들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지요. 자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멀리 보낼 수 밖에 없었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그러했을까하는 궁금해집니다. 이수건의 책 <영남사림파의 형성>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는 있어요. 본 현에 남아있는 김씨는 족세가 미약하다고 말이죠. 2011년에 발표된 영남대학교 김호동 교수의 '고려.조선 초 언양김씨 가문의 관계진출과 정치적 위상'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한 이곳에는 언양김씨를 고려시대 유명 가문으로 이끈 김취려의 묘가 있어요. 언양김씨의 시조는 대보공 김알지의 28세손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김선이죠. 김선의 후손인 김부의 아들이 위열공 김취려예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엔 송대리는 김취려가 어릴때 놀던 곳으로 직접 심은 소나무가 아직도 있고 그 무덤이 마을 안에 있다고 해요. <동국여지승람>이 성종 17년인 1486년 만들어진 책이니 300여년 가까이 된 소나무가 남아있었던 것이죠. 고송의 은은한 향은 지금도 남아있어요.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한 소나무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죠.

 

 

 김취려는 압록강을 쳐들어 온 거란군을 무찌리는 큰 공을 세웠어요. 고려고종 3년인 1216년의 일이죠. 1년 뒤인 1217년 금오위상장군에 임명되었지요. 이듬해에는 전군병마사가 돼거란군을 무찔렀어요. 그 외에도 수ㅁ낳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왕에게 신임을 받았죠. 압록강이라면 언양에서 정말 먼 곳이죠. 어때요. 그럴듯한 가요. 고향을 떠나 있어 풍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후 고려시대 언양김씨는 이름난 무신을 배출한 가문으로 성장했어요. 김취려부터 5대에 걸쳐 수상이나 재상이 될 정도로 말이죠. 아들과 사위를 포함해 12명이나 주요 관직에 오르는 등 조선 초기까지 번성했다지요. 언양김씨가 주로 사는 곳은 다음과 같아요.

 

 

-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매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 구동리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면 천홍리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정리
-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달천리
-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마항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용호리
-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언양김씨 거주 중 언양뿐만 아니라 경상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대다수가 충청도와 전라도에 거주하고 있죠.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가 뿌리를 내린 것이에요. '언양' 김씨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말이죠.

왜 일까요. 뿌리에 해당하는 고향을 멀리 떠난 이유가 정말 풍수적인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다양한 이유 중 하나겠죠.

 그래도 이 이야기가 그리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아요. 개성에서 천리 길인 언양. 성공하려면 개성에 가야하니 말이죠. 개성 가까이 가려면 언양이 자연히 멀어지겠죠.

 

 송대리 능골의 이야기는 언양이어서가 아니라 지방이라서 겪는 일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 하네요.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고 말이죠. 대신 고향을 지키며 사는 일이 미덕이었던 시대, 고향을 떠나는 일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거예요. 고향을 떠나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기 때문에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김취려는 자신이 태어났던 능골에 묻혀있습니다. 그도 자신의 조상들처럼 후손들을 돌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