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설화#3]서축의 인연이 닿은 동축사
즐기 GO/울산웹툰2014. 4. 30. 09:44

"도대체 어디서 온 배야? 배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울산앞바다에 도착한 큰 배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어요. 하루 이틀이 지나도 배에서는 아무도 내리질 않았죠. 배의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지요.

 확인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어요. 배에 올라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거였죠.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배 위에 올랐어요. 배 안의 상황을 전혀 짐작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긴장은 끝이 없었어요. 혹시 모를 일을 막기 위해 무기도 챙겨서 말이죠.

 배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꼼꼼히 확인해야 했죠. 잠시 후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요. 으레 있어야 할 선원 한 명도 타지 않은 무인선이었거든요. 사람 없이 어떻게 배가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죠. 의견이 분분했어요.

 조심스럽게 배를 수색하던 사람들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어요. 불상재료, 설계도, 모형불상 등이었죠.

 어느 날 갑자기 흘러 들어온 배 안에서 발견된 불상 재료들. 무슨 일 일까요? 그 때 누군가 편지를 발견했어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돼 있었지만 곧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해 글을 읽어냈죠.

 전후 사정은 이러했어요. 배를 보낸 사람은 인도의 왕인 아소카왕이었어요. 그는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완성하면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죠. 동시에 그는 수많은 삶들을 희생시킨 인물이었습니다.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거든요. 전쟁 때문에 피비린내가 온 나라에 진동했지요. 아소카왕은 부모와 남편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회의가 들었죠. 비폭력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자신이 한스러웠어요.

'지난 날을 되돌릴 수 없을까'

 아소카왕은 참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요.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서 말이죠. 전쟁의 비참함을 깊이 반성하며 불교를 통해 그 죄를 덜어내려고 했던 거에요. 그래서 곳곳에 절을 세우고 불교를 장려했죠. 게다가 이웃 나라에게까지 불교를 전파시키려고 했어요.

또 하나 주력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장육불상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전국에 지시를 내려, 질 좋은 황금과 황철을 모았어요. 불상제조 일인자들도 불러 들였지요. 최고의 불상이 만들어질 최적의 환경이 갖추어진 셈이에요. 아소카왕의 죄를 사할 날은 머지 않은 듯 보였지요.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불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좋은 재료와 기술자로도 불상은 완성된 기미가 없었지요. 번번이 실패를 맛보고 말았죠.

마음 급한 왕의 고민은 커져만 갔어요. 반면 세자는 왕이 하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 세자가 못마땅한 왕이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너는 아비가 이리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욕심을 버리십시오."

"뭐? 네 이놈!"

"아버님의 손은 핏빛이에요. 폭정을 한 아버지의 손으로 불상이 만들어지겠습니까? 인연이 닿는데 보내면 그곳에서 불상이 만들어질 겁니다. 욕심을 내려놓으시고 재료를 배에 실어 띄워 보내세요."

아소카왕의 절망은 커졌어요. 누구든지 불상을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음속 욕심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버리기로 했죠.

그제야 세자의 말이 귀에 들어왔어요. 세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 주었죠. 일단 큰 배를 구해 불상을 만들 재료부터 실었죠. 철 57,000근, 황금 30,000푼을 배에 실었어요.

이뿐이 아니었어요. 불상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자료도 빼놓지 않고 챙겼죠. 물론 배를 묶지 않고 두었어요. 그렇게 배는 바람과 파도가 이끄는 대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아소카왕이 할 일은 인연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죠. 배는 거친 파도를 갈라 인도양에서 뱅골만을 거쳐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거쳐 동해까지 왔죠. 미얀마, 태국, 베트남, 중국, 필리핀을 지나 최종 도착한 곳이 바로 신라의 울산이었어요.

그때가 573년 신라 진흥왕 34년이었어요.

아소카왕은 기원전 273년에서 232년경 살았던 인물이었어요. 배가 무려 300년 가까이 바다에서 떠돈 셈이죠. 어마어마한 시간이에요. 이리 오래 걸리는 일을 생전에 하려고 했으니 잘 될 리가 없었을 거에요. 시간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죠. 진흥왕도 불교 정비에 주력을 다하던 인물이었으니 흔쾌히 아소카왕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곧바로 불상 제작을 지시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라의 장인들은 단 한번의 실수 없이 불상제작에 성공했대요. 아소카왕의 인연이 신라와 닿았던 거죠.

 

동축사 삼층석탑(2013 울산의 문화재)

 

 불상은 황룡사에 봉안했어요. 울산에서도 서축에서 도착한 배를 기념하고 모형물상을 모시기 위해 성 동쪽의 높고 깨끗한 땅을 골랐지요. 그곳에 동축사를 지었어요. 서축과 인연이 닿은 절이라는 뜻이지요.

 

 

아소카왕이 보낸 배는 왜 울산에 왔을까요.

울산이 신라의 수도인 경주의 주요 외항이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선장이 항로를 잡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찾아올 수 있었나 하는 점은 의문스러워요. 이유는 이것만은 아닌 듯 보여요. 수많은 희생을 보았던 아소카왕이 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 곳이 울산이었으니까요. 인연은 아무 곳에서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에요.

어때요. 우리가 사는 울산이 더 신비해 보이지 않나요.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 울산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