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물관]태화강인의 삶과 죽음 특별전은 어떤 전시일까?
즐기 GO/문화예술2014. 4. 18. 11:55

 

 울산은 예로부터 선조들의 삶의 터전으로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으로 대표되는 선사문화가 꽃피었던 곳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환호가 발견된 검단리유적(국가사적 제332호)을 비롯하여 수 많은 선사 마을유적과 농경유적들이 확인되기도 했죠.

울산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선사시대 울산에 살았던 태화강의 마을, 사회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특별기획전을 준비했습니다. '태화강의 삶과 죽음'이라는 특별전으로 4월8일부터 7월 6일까지 진행되는 전시입니다.

<태화강의 삶과 죽음>특별전은 어떤 전시일까?

선사문화의 시작 

 우리나라의 동남단에 위치한 울산은 바다와 태화강를 비롯한 여러 하천을 끼고 있어 각종 식량원이 풍부했습니다. 비교적 따뜻한 기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주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죠. 

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전, 태화강유역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고, 신석기시대에는 사냥 및 어로와 채집생활로 삶을 영위하였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에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루며 그들의 선사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죠.

제1전시실 

 제1전시실에는 태화강변에 사람이 처음 살게되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모습, 청동기시대 태화강 일상생활과 마을, 사회의 모습이 전시됩니다.

230여점에 달하는 실제 유물들과 함께 만나 볼 수 있고, 태화강인의 삶을 실감나는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착생활의 시작


 청동기시대는 청동으로 만든 도구와 무기를 사용하고, 사람들이 농경문화를 전파하는 시기입니다. 울산은 전 지역에 걸쳐 청동기시대 마을과 농경유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밭농사와 논농사가 보급.확산되면서 큰 마을들이 형성되고, 울산지역의 독특한 문화인 '울산식 집자리'와 '검단리식 토기'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후 마을이 커지면서 마을의 우두머리, 즉 수장이 나타난 계층사회로 발전하였고 수장의 사회지배에 따라 고인돌(지석묘)이나 마을을 둘러싸는 경계표시 또는 방어시설인 환호시설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울산에서는 청동기 후기가 되면 집자리의 규모가 작아지고 규격화되는데, 이것이 '울산식 집자리'입니다. 이 집자리는 장방형 또는 장방형의 구덩이에 4개~8개의 기둥자리가 대칭적으로 배열되고, 내부에는 음식을 조리하고 난방을 하는 화덕자리가 있습니다.

울산 연암동유적에서는 집자리 주변에 둥근 도랑으로 둘러 싸여 있으면서 생토벽을 뚫은 터널식과 돌을 이용한 배수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집자리는 울산을 중심으로 동남해안지역에서 대부분 확인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부터 나타나 후기에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농경


 청동기시대에는 마을유적의 상당수가 하천변의 얕은 구릉지대를 따라 분포하면서 밭과 논농사을 지었습니다. 논과 밭에서 재배한 곡물의 종류는 지금과 같은 벼.팥.조.피.콩.보리 등이며, 곡식을 수확할 때 반달돌칼.돌낫 등의 도구를 사용하였고 갈돌과 갈판, 공이와 절구 등으로 곡물을 알곡이나 가루로 만드는데 이용하였습니다. 

 청동기시대 농사의 양상을 보면 전기에는 논농사보다 밭농사의 비중이 컸고, 후기로 오면서 점차 논농사의 비중이 커져 갔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해당되는 논 유구는 남구 옥현유적, 남구 야음동유적, 울주 굴화리유적, 서부리 남천유적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그릇


  청동기시대 토기는 민무늬토기로,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다소 거친 진흙으로 빚은 후 한데 가마에서 구웠으며 바닥이 납작하고 황갈색 또는 적갈색을 띱니다.

 토기는 용도에 따라 곡식을 보관하는 저장용(항아리모양토기)과 조리용(바리모양토기), 접시나 대접과 같은 소형의 식사용, 의례용 토기(붉은간토기) 등으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생업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생활뿐만 아니라, 여전히 어로나 수렵, 채집도 생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로는 사람들이 강이나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그물.작살 등을 이용하여 각종 물고기를 잡았죠.

수렵은 사람들의 단백질공급 제공 외에 뼈.뿔.이빨.가죽 등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구를 만드는 재료를 확보할 목적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마을 생활


 청동기시대의 마을사람들은 생명과 재산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목책이나 마을을 둘러싸는 도랑 시설인 환호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검단리유적에서 마을을 둘러싸는 청동기시대 환호가 처음으로 확인된 이래로 울주 천상리유적, 북구 연암동유적, 울주 명산리유적 등에서 조사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에는 집자리와 마을이 형성되면서 그들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마을주변의 적정 장소에서 제사나 의례행위가 이루어졌습니다. 기원의 대상물이나 농경.풍요에 대한 의례행위로 입암리 유적에서 확인된 4기의 선돌(입석)과 덕신리572-6유적에서 확인된 솟대유구가 있습니다. 이처럼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죽음으로 삶을 마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생활의례와 장사의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2전시실

 제2전시실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죽음, 의례 및 그들의 정신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울산지역에서의 발굴 역사와 발굴 뒷이야기, 그리고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유물의 보존처리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태화강의 죽음과 무덤


울산지역의 청동기시대 무덤의 수는 매우 적은 양으로 약 40여기 정도가 발굴 조사되었습니다. 울산지역의 무덤은 움무덤, 주구묘, 돌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널무덤, 지석묘 등 다양하게 확인되며 소아용 옹관묘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석묘는 상석 크기가 단일규모로는 가장 큰 언양 지석묘를 비롯하여 검단리 지석묘, 덕신리 지석묘, 복안리 지석묘 등 약 30개소가 전 울산 지역에 걸쳐 확인되고 있습니다. 중산동 715-1유적의 경우에는 상석 밑에 약간의 수혈을 판 후 내부에 잔 자갈을 깔고 주변에 큰 할석을 돌린 위석식 지석묘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지석묘의 상석은 의례적인 성격이 강한 상징적 기념물로 보기도 한다. 무덤에는 간돌검, 돌화살촉, 붉은간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발굴조사의 세계


  속의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과정을 알아보고, 울산지역에서 지금까지 시행하였던 발굴조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기서는 발굴조사에 대한 진솔한 뒷이야기까지 듣고 볼 수 있습니다.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


 발굴조사를 통해 박물관에 입수된 유물을 어떤 과학적인 방법으로 보존되고, 유물의 원형대로 복원되는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이 특별전시가 선사시대 울산지역의 사회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관람안내

관람시간 평일, 주말, 공휴일 09:00~18:00(입장 : 17:00까지)

휴관일 매주 월요일 : 휴관(휴관일이 공휴일인 경우, 공휴일 다음날)

단체관람 예약 15인 이상 단체관람은 사전에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해 주십시오.

관람료 무료

전시 주의사항

  • 전시실 입장 전에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주시거나 진동으로 전환하여 주십시오.
  • 전시물에 손을 대거나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행위는 삼가 주십시오.
  • 전시실 내에서 플래시를 이용한 촬영은 삼가 주십시오.
  • 어린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관람질서에 대해 지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울산박물관 주소/전화

울산광역시 남구 두왕로 277  / TEL.052)222-8501~3

 

 출처/울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