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일은 삼일절이었습니다.

삼일절의 의의를 기리고 숭고한 애국심을 되새기기 위한 행사가 울산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행사는 올해로 15회째 개최되고 있습니다. 3.1만세운동 재현 행사의 일정과 삼일절의 의의에 대해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병영 3.1독립만세운동 재현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울산시, 중구, 울산보훈지청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4월 3일 오후 2시에 순국지사 위령제로 막을 열게 됩니다. 순국지사 위령제는 당시 일본경찰의 총칼에 숨진 순국지사들이 안장된 서동 황방산에서 삼일사봉제회원, 유족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며, 이어 4일에는 추모제, 출정식 및 태극기 물결, 재현 퍼포먼스, 독도 망언 궐기대회, 풍물경연대회, 나라사랑 콘서트, 가요제 등이 열립니다.

추모제는 오전 10시 삼일사당에서 거행되며, 고유문 낭독, 추모의식 3.1사 노래 순으로 진행됩니다. 또 10시50분부터는 병영초등학교에서 병영사거리까지 3.1독립만세 출정식 및 태극기 물결이 펼쳐지며, 태극기 물결 이후 12시50분까지는 병영사거리에서 북춤 공연, 재현 단막극, 4인 순국열사 헌화, 진혼무 등 재현퍼포먼스가 열립니다.

 

 특히 독도 망언 궐기대회, 나라사랑 콘서트 등으로 분위기를 돋워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며, 이번 태극기 물결은 13개동 주민과 학생, 유치원 및 어린이집 원아 등이 참여해 병영초등학교에서 병영사거리까지 태극 머리띠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 함성으로 그날을 재현한다고 합니다.

5일에는 열리는 ‘나도 애국자 참여마당’에서는 중구지역 유치부, 초등부를 대상으로 태극기 부채 및 목걸이 만들기, 독립선언서 손도장 찍기, 휴대폰 사진 공모전, 애국열사 감사메시지 쓰기 등이 진행됩니다. 이와 함께 중구어린이 합창단 공연, 3.1절 플래쉬 몹, OX퀴즈가 무대행사로 진행되며, 특히 ‘애국가 정확하게 부르기’, ‘나도 독립투사 목청대회’ 등 깜짝 이벤트도 마련되어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행사에 참여하시면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선조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에게도 삼일절을 교과서가 아닌 실제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입니다.

 울산 병영에서 발생한 3•1독립만세 운동은 지난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병영 지역 청년회원과 주민들이 4월 4일 오전 9시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 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병영 독립만세운동 관련 순국자는 엄준, 주사문, 문성초, 김응룡 등 4명이며, 일본경찰에 채포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자는 권석운, 김송근, 김장수 등 22명에 이릅니다. 값진 희생을 한 우리들의 선조들을 생각해서라도 삼일절의 의의를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3•1운동 진행과정
 3•1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읽어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입니다. 기미년에 일어난 일이라서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부릅니다.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도시에서 농촌 등지로 전파되며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고, 갈수록 참여하는 인원과 계층이 늘어나면서 운동의 양상도 비폭력 시위에서 폭력투쟁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운동은 국외로도 확산되어 중국의 만주와 일본의 도쿄•오사카, 미국의 필라델피아 등에서도 독립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서명하고 운동을 계획한 이들이 각 종교와 단체를 연합한 민족대표 33인이라면, 실제 전국적인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무명의 학생과 청년들이었습니다. 일제는 이를 무력으로 강경 진압해 통계상으로만 3개월 동안 7,509명이 사망했으며, 15,961명이 상해를 입었습니다.

3•1운동의 의의와 한계점

3.1운동은 일단 흩어져서 진행되던 독립투쟁을 통합하고 그로 인해 조직적 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 이 운동을 계기로 일본의 통치방식이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기는 하지만, 명분상은 문화통치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3.1운동을 계기로 각지에 떨어져 있던 임시정부가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외에도 다른 나라 해방운동에도 큰 영양을 끼쳤다는 점 역시 3.1 운동의 큰 의의입니다.

 다만, 한계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결과적으로는 자립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다는 것과, 민족대표 33인이 다소 소극적인 자세로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독립운동선언서를 낭독한 이후에 종로경찰서에 자수한 민족대표가 상당수였다는 점만 보더라도 삼일운동의 시작은 33인에 의한 것이었으나 그 진행은 우리 민족 전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뜻깊은 행사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기 위해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병영3·1독립만세 운동 재현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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