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강프로그램을 자주 보게 됩니다.

 덕분에 건강에 좋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유산균 음료가 실은 설탕이 가득 들은 우유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고기가 먹고 싶으면 고기보다 몇 배 더 많이 야채를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이 위협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다 알면서도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게 되는 자신의 의지를 탓하기도 합니다. 의지만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면 내 자신의 건강을 나라에서 관리해 준다면 어떨까요? 하루에 얼마큼씩 운동해야 하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먹는 것은 물론 위생까지 철저히 관리해준다면, 그래서 모두 건강한 몸을 갖게 되고 병으로 고통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회 된다면, 그런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들은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요?

 

출처/민음사

 율리 체의 작품 <어떤 소송>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과 그리 멀지 않은 21세기 중엽입니다.

 사실 이 책이 최근에 발표된 것은 아니고 2009년 독일에서 발표된 것으로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율리 체라는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어권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율리 체의 첫 장편소설은 <독수리와 천사>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통해 십여 개 이상의 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작가의 의식이나 필력을 인정받은 것이니 독자 입장에서는 선택에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가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감을 쌓았다면 이제 작품을 들여다 볼까요. 앞서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짐작하셨겠지만 <어떤 소송>의 사회적 배경은 매일의 영양섭취와 수면 시간, 운동량까지 보고해야하는 건강 지상주의 사회입니다. 소설의 서문에서 체제 수호자인 인물 크리머의 책 중 일부를 인용하는데, '건강은 개개인의 완성을 넘어 사회적인 더불어 살기의 완벽성으로 향한다. 건강은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지의 목표이며 그러기에 사회와 법 그리고 정치의 자연스러운 목표이다'내용이 있습니다. 건강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량을 채우지 않거나 영양섭취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범법자로 취급되는 그런 사회입니다.

 주인공인 미아 홀은 이런 체제에 순응적인 인물로 생물학자입니다. 이런 건강 독재 체제 속에서도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모리츠라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동생이 성폭행 및 살인죄로 기소되고 남동생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다가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아는 정해진 규정을 어기고 법정에 드나드는 신세가 됩니다. 미아는 전혀 뜻하지 않았지만 체제에 순응적인 인물에서 혁명가 소리까지 듣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건강을 지켜주는 사회 체제, 얼핏 들으면 정말 이상적인 국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신체 건강의 위해서라면 인간의 자유나 사적인 영역 보호같은 것은 얼마든지 침범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병날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의 자유를 찾고자 대항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이상적인 체재라 해도 개인의 자유와 사적인 영역을 짓밟고 세워진다면 과연 그것인 인간을 위한 체재가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하면 대목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사이언스 픽션 분야의 문학상 후보로 지목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어떤 소송> 속의 세계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소개된 내용인데,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는 수십 년 전부터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감도 있다. 우리가 최선의 국가 형태라 여기는 이 체제가 어쩌면 다시 전체주의나 독재 체제로 급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90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비현실적으로 여긴다. 바로 이것이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잠들지 않은 비판적 의식이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믿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가치를 내세우면서 개인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빅브라더는 과연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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