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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시작한 <울산의 박물관 아이와 100배 즐기기> 오늘은 벌써 아홉번째 시간입니당....
울산에 가 볼만한 박물관이 이렇게 많았나 하시는 분들 계시죠...
맞습니다.. 맞고요...
울산엔 이제 가 볼만 한 곳이 이렇게 많습니다..
(말해 놓고 참 흐뭇하네요^^)

박물관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지만....오늘은 박제상 기념관을 둘러 볼까 합니당...
사진모델은 상진초등학교 4학년 해인양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박제상은 신라의 충신입니다...

박제상유적지는 치산서원, 치술령, 은을암과 사당인 충렬묘, 신모사, 쌍정려가 있습니다.

특히 치산서원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후예이며,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실성왕의 딸)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으로 조선 영조 21년 1745년 최초로 세워져 박제상과 그 부인의 제를 올렸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폐쇄됐습니다.

1992년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구요.

이곳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실린 내용들을 미루어 짐작컨대 박제상의 부인 금교부인 김씨의 친정이 있던 곳이라 추정되는 곳입니다.(월평마을)

일단은 치산서원을 먼저 둘러보시고( 관설당, 사당 등), 박제상 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려
영상실에서 영상(내용은 박제상이 활약하던 시대 국제 정세를 보여주는데 참 내용도 좋고 구성도 좋습니다, 5분 정도 길이)을 보시고, 전시관을 둘러보면 됩니다.
전시관은 박제상 관련 전시관과 울주지역의 문화 유적 관련 전시관 두개가 있습니다...

박제상은?

신라 제 17대 내물왕 ~ 신라 제 18대 실성왕 ~ 신라 제 19대 눌지왕 시절까지 활동한 신라의 충신. 17대 내물왕때는 십량주의 태수를 지냈다.신라는 백제를 견제하고 고구려와 화친하기 위해 18대왕 실성왕 시절, 402년 왜에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412년에는 고구려에 미사흔의 형 복호를 볼모로 보냈다.실성왕이 지나고 19대 눌지왕때 눌지왕은 두 아우를 잊을수 없었다.
자신의 아우를 구해올 신하를 구하자, 신하 한명이 박제상을 추천했다.신라 418년(눌지왕 1년) 삽량주(양산) 태수로 있던 56세 박제상은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있던 눌지왕의 첫째 동생 복해(卜海, 또는 보해)를 탈출시켜 귀국했으며 집에도 들르지 않고 다시 일본에 특파되어 볼모로 잡혀있던 눌지왕의 둘째 동생 미사흔(未斯欣, 또는 미해)을 탈출시켜 귀국하게 하였다.
박제상은 왜왕을 꼬드겼다. 눌지왕을 욕하며 눌지왕이 자신의 가족을 옥에 가뒀다고 하자 왜왕은 박제상의 지혜와 재능을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으며, 안심하고 박제상을 아끼고 신하직까지 내려주었다.
어느 안개가 자욱히 낀날.
박제상은 미사흔을 먼저 보내고,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은 남아 '늦잠을 자는 것 입니다'라는 투로 미사흔 앞방을 지키다가 의문을 가지던 왜국의 군사들에게 결국은 발각됐다.
자신은 체포되어 발 가죽을 벗기고 갈대 위를 걷게 하고, 쇠를 달구어 그 위에 세우는 등의 고문을 당하며 일본 신하가 될 것을 강요당하였으나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며 거절하고 목도(木島 : 기시마섬)에서 화형을 당해 죽었다. 지금도 갈대 위가 붉은 것은 박제상 피의 흔적이라고 한다.

박제상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두 딸과 치술령(울산, 경주 경계)에 올라가 남편을 부르며 통곡을 하다가 죽어서 망부석이 되었다. 이 망부석은 현재도 유명한 망부석이며 사람들이 부인 김씨를 치술신모(수릿재 신모)라고 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두 딸 박아기, 박아경 또한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하다 죽으니 세 모녀를 "호국삼신여"라 칭하고 치술 신모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하고 국대부인에 봉했다.
왕이 박제상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대아찬에 봉하고, 박제상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둘째 딸을 미사흔과 결혼시켰다.


- 이곳에 가시면 아이들에게 서원에서의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세요.....

외삼문(삼강문)과 내삼문(성인문)을 오를 때에는 오른발을 먼저 올리고 왼발을 붙인다.

이때 손모양은 남자의 경우 왼손이 위로 오도록 하고 엄지손가락은 깍지를 낀다. 여자는 반대로 하면 된다.

문을 통과할 때는 항상 오른쪽문이 입문이고 왼쪽문이 출문이다.(신도:가운데문)

그리고 사당 앞에 있는 계단을 오를 때에도 오른쪽 계단으로 오르고 왼쪽계단으로 내려오면 된다.

가운데 문과 계단은 출입하면 안 된다.


박제상 기념관 근처 마을은 단감이 유명한 곳입니다.
가을에 가신다면 기념관 앞에서 단감을 꼭 사오시기 바랍니다...^^
이상 저는 GO! 기자였습니당...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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