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유적의 의의
   인류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기나긴 고래의 역사와는 비할 바가 못된다. 고래가 지구상에 나타난 시기는 최소한 5천만 년 이상으로 소급된다. 이에 비해 인류의 역사는 길어야 수백만 년을 넘지 못한다. 월력으로 비교해 보면 고래가 1월에 출현하였다면 인류는 12월의 어느 날쯤이 아니면 그 다음 해에 넘어가서야 비로소 출현하였던 셈이 된다. 그러므로 인류가 최초로 고래와 만난 시기는 인류의 역사와 그 기점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고래의 모습이 오늘날과 비슷한 상태에 있었던 진화된 고래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고래는 5대양 모두를 활동 무대로 삼고 종횡 무진으로 유영하다가 이따금 여러 곳의 해안에 떠밀려 와 좌초하는 특이한 경향을 보인다. 이 좌초한 고래는 그 몸뚱이를 적나라하게 인간에게 노출시킨다. 이를 처음 본 석기 시대의 인간은 그 산더미 같은 거대한 동물을 보고 외경심과 경악감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나 곧 그것이 식량이나 각종 생활 자료로서 매우 유용한 것임을 깨닫게 되어 이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인간과 고래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며 바다에 유영하는 고래에 대한 인간의 관심도 깊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인간의 고래 관찰이나 고래 이용에 관한 정보는 문자로 기록되어 남겨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역사는 길어도 수천 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록 정보는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며, 문자 발명 이전의 훨씬 긴 기간 동안의 고래에 관한 정보는 기록 정보의 영역 밖에 속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선사 시대 사람들은 그들의 각종 활동 과정에서 비문자적 수단으로 고래에 대한 각종 정보를 남겨 인간의 고래에 대한 지식 범위를 구석기 시대까지 확대시켜 주었다. 그 중요한 것이 고래에 관한 그림이나 조각이다. 그들이 습득하거나 포획하여 이용한 뒤에 모아 놓은 고래 뼈도 중요한 비기록적 자료의 하나이다. 이러한 자료들이 남겨져 있는 곳 또한 중요한 유적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문자를 갖게 된 역사 시대 이후에 형성된 유적도 많다.

고래뼈 유적
   고래 유적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고래뼈가 남아 있는 유적이다. 가장 오래된 유적은 프랑스 아리에주 지방의 브데일락에 있는데, 이곳의 구석기 시대 지층(地層)에서 향고래(sperm whale)의 이빨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구석기 시대인이 잡은 향고래에서 나온 이빨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당시 사람들이 좌초한 향고래에서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어주 내무의 유적에서는 9140±200B.P.(B.P.는 현재 이전(before the present)을 말함)의 유적에서 고래뼈가 발견되었다. 1만 년 가까운 시기의 고래뼈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도 좌초된 고래뼈라고 보아야 한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바다에 나가 고래를 잡지는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에서 수백 년 정도가 지난 유적에서 발견된 고래뼈는 많다. 시베리아 최동부 추코트카반도의 여러 유적에는 건축 자재로 사용된 북극고래(Greenland right whale 또는 Bowhead whale)와 귀신고래(gray whale)의 뼈가 많이 남아 있다. 이는 그곳 원주민이 잡은 고래의 뼈로 보인다. 이 반도의 동남부에 있는 이티그랜도(島)에는 분명히 종교적 목적으로 고래뼈를 배열해 놓은 유적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훼일 앨리(Whale Alley. 고래 오솔길)이다. 수천 개의 고래뼈가 마치 보초병들처럼 아직도 서 있고 해변에 100마리 이상 되는 북극고래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과 턱뼈가 같은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포경 의식과 관계가 있는 유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많은 동종의 고래뼈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은 그것들이 좌초한 고래의 뼈가 아니고 포획한 고래의 뼈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계 각처에 무수히 산재되어 있는 조개무지에는 고래뼈가 출토되는 곳이 많고 옛 주거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고래뼈는 돌고래뼈가 많으나 대형 고래뼈도 발견되고 있다. 이들 중에서 대형 고래의 뼈는 좌초된 고래의 뼈였던 것이 많았을 것이나 돌고래뼈 중에는 포획한 것의 뼈였던 것도 제법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곳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고래뼈가 출토되었다. 북으로는 선봉(웅기)의 서포항 유적에서 출토되고, 남에서는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부산시 영도의 동삼동 조개무지의 여러 지층에서 대형고래와 돌고래의 뼈가 출토되었다. 연대가 3940 B.C.±140 경으로 밝혀진 층위에서도 출토되었다. 약 6,000년 전의 고래뼈이다. 고래뼈로 만든 결합 낚시(낚시의 축 부분과 침 부분을 따로 만들어 서로 결합하여 만든 낚시)의 축 부분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주목을 끄는 것은 근년에 발굴된 통영군 산양면 연대도의 신석기 시대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고래뼈들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종(種)의 동정(同定)이 이루어져 몇 가지 고래류의 종류가 밝혀졌다. 대부분이 돌고래였는데 확인된 종은 참돌고래(common dolphin), 낫돌고래(Pacific white-sided dolphin) 및 병코돌고래(bottlenose dolphin)였다. 대형 돌고래에 속하는 짱구돌고래(pilot whale)류에 속하는 돌고래의 뼈도 발견되었다. 대형 고래의 뼈도 약간 출토되었으나 그 종은 밝혀지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이 조개무지에서는 인골의 오른쪽 발목에 끼웠던 족식품(足飾品)이 나왔는데 그것이 병코돌고래, 수달 및 너구리의 이빨로 만든 것이었다.
   일본 이시가와(石川)현의 마와키(眞脇)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대량의 돌고래뼈가 출토되어 그곳에서 일찍부터 돌고래 포경이 행해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래와 포경그림

   고래 그림중 가장 오래된 것은 스페인 남부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말라가의 네르하 동굴에서 발견된 돌고래 그림이다. 동굴 안의 종유석에 길이 30cm 정도의 돌고래들을 붉은 황토로 그려 놓은 것이 있다. 이 그림은 20,000∼15,000 B.C.의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고래 그림으로서는 이때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돌고래에 색채를 넣어 그린 그림으로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리스 크리트도(島)의 크노소스 궁전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프레스코 벽화이다. 이 돌고래는 줄무늬돌고래(striped dolphin)로 보여지고 있는데 기원전 20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의 지중해 연안국, 특히 그리스에서는 사람들이 돌고래를 존경하고 돌고래와 친하게 지냈다. 돌고래는 경화(硬貨)나 꽃병 같은 것에 등장하였고 건축물에 장식의 제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의 전설에도 돌고래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아리온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역사 시대로 넘어온 뒤의 고래 그림으로서 주목을 끄는 것은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냐의 마그달레나만(灣) 바로 북쪽 언덕 한 동굴 벽에 그려져 있는 고래 그림이다. 몇 개의 작살이 몸에 꽂혀 있는 고래 그림이 있는데, 이는 포경 광경을 표현한 것이다. 그곳은 귀신고래의 번식지로서 겨울에 귀신고래가 많이 집결하는 점을 생각할 때 그 고래는 귀신고래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고래 외에 윤곽이 뚜렷한 돌고래 한 마리와 그 새끼도 그려져 있다. 이들 고래 그림이 그려진 연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500∼1,000년이 지난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다.

고래조각화

01. 석장리 유적의 조각화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에서 고래 또는 돌고래의 조각화, 즉 새긴 그림이 발견되었다. 남한에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1964년에 발굴 조사된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석장리(石壯里)의 금강 북안(北岸)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는 각종 유물과 함께 후기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주거지 중 제1지구 제5지층에서 발견된 제1호 주거지에서는 석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이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는데, 더욱 주목되었던 것은 주거지 바닥에 우묵하게 새겨 놓은 길이 53cm의 고래 형상이었다. 발굴자의 보고에 의하면 이 형상은 점토에 음각한 것으로서 꼬리가 수평으로 펼쳐져 있고 눈 부분을 오목하게 파 내었고, 지느러미도 뚜렷하게 보였다고 하였다. 이 주거지의 절대 연대는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하여 20,830±1,880 B.P.로 밝혀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고래의 조각이다. 발굴자는 이 입체 음각 고래가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 말하기를 "실용성보다는 어떠한 때에 고래를 보고 물고기 중의 왕이나 신으로 생각하게 되어 고래에게 물고기 잡이에서의 행운을 빌기 위하여 땅에 새겨서 모셨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또 고래잡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의 포경을 논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돌고래나 고래의 좌초를 바라는 조각인지도 모른다. 이 조각이 실제로 고래를 나타낸 것이라면 그것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런데 다 같은 고래라 하더라도 그것이 대형 고래를 나타낸 것인지, 또는 돌고래를 나타낸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고래를 표현할 의도로 조각한 것이었는지의 여부도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고기를 조각하면서 삼각형 물고기 꼬리의 표현 기법상 꼬리를 수평으로 조각하지나 않았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02. 노르웨이 암각화

   세계의 해안 지방에서는 고래류를 소재로 한 암각화가 다소 발견되고 있으나 연대가 오래되고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온 것은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암각화들이다. 노르웨이는 포경 선발국이고 포경업도 성행되었으므로 고래 암각화도 많이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북부 노르웨이의 뢰되이에서는 기원전 약 2200년에 새겨진 것으로 보여지고 있는 신석기 시대의 고래 암각화가 있다. 한 마리의 물범과 2마리의 돌고래가 헤엄치고 있고 그 뒤에 한 사람이 탄 작은 배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돌고래 앞에는 엉뚱하게도 돌고래쪽으로 향하여 서 있는 뿔이 큰 사슴인 엘크(elk)가 한 마리 새겨져 있다. 이는 고래 그림과는 시기를 달리하여 새겨진 그림인지도 모른다.
   노르웨이 드라멘 부스케루드의 스코게르베이엔에서는 2점의 특이한 돌고래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하나는 돌고래 한 마리가 사슴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또 한 마리의 돌고래도 그 모양이 앞의 것과 유사하다. 그 원 그림은 길이가 약 2.3m에 달한다. 모두 몸 전체에 기린의 몸 무늬와 유사한 그물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두 그림의 몸 모양과 뾰족한 주둥이 모양으로 보아 모두가 돌고래임은 확실하다. 이들은 신석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서 수렵과 어로를 다룬 그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르웨이 로갈란드의 멜링에서는 대형 고래의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머리와 허리 부분의 주위에 적게는 7명 정도, 많게는 10명 이상의 사람이 탄 3척의 배가 있고, 왼쪽 꼬리 가까운 부분에는 반동강이 난 배의 그림이 있고 그 밑에 3개의 점이 있다. 이것은 배가 고래 꼬리의 일격을 받아 배는 파괴되고 일부 선원이 물 속에 빠진 것을 표현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포경선으로 보이는 배들과 고래의 상대적 크기로 보아 고래는 대형 고래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고래의 뚱뚱한 모양으로 보아 그것은 긴수염고래(right whale)였는지 모른다.

- 출처 :  울산 고래해양체험관 -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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