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그레한 볼, 야무지게 다문 입술,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틀어 올린 머리카락 사이로 여기저기 잔머리가 삐져나온 한 여자가 약간은 부끄러워 하는 미소를 살짝 머금은 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한 팔에는 우유가 가득 들어 제법 무거워 보이는 양동이가 들려 있고, 바로 뒤에는 소 한 마리가 화면 뒤쪽을 보고 서 있습니다. 그녀는 농장에서 우유를 짜고 여러 가지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인 듯 한데 그녀의 표정에는 지친다거나 힘들다는 기색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할 뿐 고된 노동이 그녀의 무엇도 변질시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알프레드 롤의 『농장 처녀 만다 라메트리의 초상』(1887)'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목요일의 그림>의 저자 전원경은 그림 속의 만다에게서 이 땅의 수많은 직장여성들을 봅니다. 지은이는 '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감당하면서 더 나은 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후배들을 위해서 썼다'고 말합니다. '일주일에 그림 하나, 행복한 일상을 위한 특별한 그림 선물'이라는 부제를 통해 고된 현실에 부대끼는 우리를 위로해 주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과 이 책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 하나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목요일이냐구요. 목요일은 저자의 말마따나 '피로의 정점을 찍은 후에 희망의 주말로 다가가는 분수령 같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 있을망정 하루만 더 일하면 주말이 온다는 생각에 슬쩍 마음이 가벼워지는 날이기도 하지요. 그런 목요일에 지은이의 경험이 녹아있는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진 아름다운 그림이정말 큰 선물이 되겠지요.

 지금 시기에 맞추어 11월 둘째 주 그림을 찾아봅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오토맷』(1927)'이란 그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토맷이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이식당이라고 합니다. 종업원 대신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고 손님들은 자유롭게 커피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두운 밤 상점 내부의 전등이 고스란히 비치는 창을 등지고 잘 차려입은 한 여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림입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은 없는 듯 하고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그림 속 여자의 고독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지은이는 그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밤 10시까지 야근을 한 뒤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온 친구와의 통화 내용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이 겹친 친구의 한숨 섞인 푸념을 들어주고 친구가 전화를 끊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할 친구도 더 이상 없다'고 한 말을 통해 자신의 외로웠던 유학시절을 떠올립니다. '말 할 대상이 없고 모국어를 떠들 수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외로웠다'고 하면서 '아예 말 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주변에 사람은 늘 많은데 정작 이야기를 나눌 대상은 없을 때'인 것 같다고 합니다.

 지은이의 경험을 듣고 난 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 여자의 사정이 상상이 됩니다. 늦은 저녁 출출함을 달래려고 들렸지만 사람도 없이 썰렁한 오토맷에서 그녀는 더욱 외로워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속의 여자가 한 쪽 장갑을 낀 채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지은이는 '마음의 오한'을 달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마음의 오한'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정작 말을 건넬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하는 도시인의 뼈아픈 고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의 그림>의 지은이 전원경을 소개한 글에서 '그림에 대해 가장 지적이고 논리적은 글을 쓰는 예술 에세이스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목요일의 그림>을 보고 나면 그림을 아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 자세며 손 모양 혹은 주변에 놓여있는 사물이나 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흔적까지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그림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직은 지은이의 설명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되짚어 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아직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만) 일주일에 한 편씩 읽도록 되어있는데 참지 못하고 다 읽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다시 한 번 더 제 자신에게 그림을 선물할 작정입니다. 찬찬히 들여다 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카노 쿄코의 <무서운 그림>도 같이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름다운 그림 한 편에는 무서운 사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에드가 드가의 『무대 위의 무용수』(1878)'라는 그림을 통해 그 전에는 아름다운 무용수와 그림의 구도에만 집중했다면, 책을 읽고 나면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경멸이 만연하던 시대상과 무용수와 상류계급 남성들의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되고 비로소 커튼 뒤 무용수를 지켜보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목요일의 그림>이나 <무서운 그림> 그림에 대한 책이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림을 소개하고 있어 다른 느낌을 줍니다. 겨울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고 있는 이 때 자신을 위한 따뜻한 선물을 해 보시면 어떨까요.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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