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최현배 선생은 울산의 인물 중 한 분 인데요. 외솔 최현배 선생 탄생 119주년 기념하여 '한글문화예술제'를 열었는데요. 울산은 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넘어 한글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문화예술의 거점이 되는 도시로의 새로운 모습을 찾고자 '한글문화중심도시 울산'을 주제로 울산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요. 외솔 생가는 울산 중구 동동 613에 2009년 9월 본채와 사랑채, 부속채 등으로 복원됐습니다.

 생가와 접한 3646m²(약 1100평)에 지하 2층, 지상 1층의 외솔기념관이 2010년 10월 개관했구요. '우리말본' 등 서적 1만여 권, 논설과 추모사 등 외솔 친필원고 106건, 신문과 잡지 등 기고문 40건, 중등말본 등 선생의 저작 도서 29권, 우리말 큰사전 6권 등을 전시했습니다.

▲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

 그렇다면 외솔 최현배 선생의 주요 업적과 10월 25일 펼쳐질 외솔 최현배 선생의 일화를 그린 연극에 대해 알아볼까요?

+ 블로그기자 양수정님의 글/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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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배선생은 일제의 조선말 말살 정책에 맞서 민족주의 언어관에 입각하여 있던 분입니다. 그는 "말은 그 겨레의 정신이요 생명이라, 정신이 없는 몸뚱이가 살아갈 수 없으며, 흥해갈 수 없음도, 또한 당연의 사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말이 쇠함을 따라 그 임자인 겨레가 쇠하며, 말이 망함을 따라 그 임자인 겨레가 또한 망함을 나타내는 실례가 없지 아니하니, 만주 말과 만주 겨레가 곧 그것이다"(<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63쪽.)라는 언어민족일체관을 평생 지니고 살았는데요.

동시에 그는 조선 민족과 일본 민족은 근본적으로 다르고, 조선 민족은 불멸하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혈통·생활 근거지·언어·민족 특질·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민족의 구별이 생긴 것이며, 민족이 소멸할 이()가 없다'(<조선 민족갱생의 도>, 137쪽.)고 자신의 민족 인식을 가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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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의 국어정책 수립과 한글전용운동 전개

최현배 선생의 업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미군정에 참여하여 국어 정책을 수립하였습니다. 1945년 9월에서 1948년 9월까지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국장에 재임하여 여러 정책을 입안하였습니다. 조선교육심의회의 제9분과 교과서위원회의 위원장인 최현배는 국가의 공문서와 교과서를 한글 전용으로 사용하고, 가로쓰기를 실천하는 안건을 심의회의 전체회의에 상정하여 하여, 통과시켰습니다. 한글전용과 우리글 가로쓰기 주장은 1988년 한겨레신문이 실천하면서, 그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국어교원의 양성과 각종 교과서의 편찬에 기여하였습니다. 1948년에서 1950년까지 조선어학회가 조직한 세종중등 국어교사 양성소의 교수로 참여하였습니다. 또 일본어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때문에 일본어의 잔재가 그나마 신속히 청산될 수 있었다. 한자 사용의 폐지를 위해 <글자의 혁명>(1947)을 발행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둘째로, 한글학회의 이사장 시기에 <조선말큰사전>(1957)의 간행을 완성하였습니다.

셋째로, 한글전용운동의 전개에 매진한 바 있습니다. 그는 전 국민의 문자 생활을 한글로만 쓰도록 하려고 국회에 이를 제안하여 국회로 하여금 '한글 전용법'(1948)을 제정하게 하였습니다. 한글 전용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문자 생활의 방향을 제시한 역사적인 법률이었습니다. 1949년 5월 한글전용촉진회를 조직하였고, 그 위원장에 선임되어 계속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그가 일관되게 주장한 한글 전용 주장은 박정희 정권의 국어정책에 반영되었습니다. 한글 나라의 실현은 그의 서거 이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넷째로, 1962년 한글학회 부설로 '한글 기계화 연구소'를 조직하여 소장에 취임하고, 한글 타자기의 글자판 통일에도 앞장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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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는 1951년 1월에서 1954년 1월까지 문교부 편수국장에 다시 취임하여 활동하였습니다. 대통령 이승만이 독단적으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철폐하는 '한글 간소화 문제'를 추진하자, 여기에 반대하여 편수국장직을 사임하였습니다. 한글 간소화 안에 대해 비판하는 글과 한글학회 성명서를 발표하여, 대통령의 주장을 철회시켰습니다.

1954년 4월 연세대 교수로 다시 취임하였습니다. 1955년 4월에서 1960년 9월까지 연세대 부총장을 역임하였죠. 1956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을 때 부회장과 대표이사로 선임되었습니다. 1962년 한글전용 특별심의회 부원장으로 취임 후 1970년 3월 23일 서거하였습니다.

 

[한글이 목숨이다! – 외솔 최현배]

1. 제목 : "한글이 목숨이다!" - 외솔 최현배

2. 일시 : 10월 25일. 금요일, 늦은 7시

3. 장소 : 꽃바위문화관 3층 공연장

3. 주된 사건 : 한글을 연구하는 한글학자 최현배, 말모이사건(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형무소에 갇히게 되지만 일제의 탄압에 맞서 <말모이 작전>을 통해 민중들의 힘으로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어 우리말 큰 사전을 펴내다

5. 공연단체 : 마당극단 결

6. 주제 : "우리말과 글을 지키자"

7. 공연시간 : 70분

8. 등장인물 : 최현배(세종대왕)

곱단

정미소 사람들 / 춘삼, 동팔, 순심(곱단이 어머니)

일본순사 / 다나까, 미끼로

정부인, 숙부인, 김두봉, 주시경, 조선어학회 동지들

9. 줄거리 :

엄혹했던 일제치하, 조선민중은 감시와 탄압속에서 뭔가를 지키려 하고 있다. 일본순사들은 최현배를 취조해 조선민중이 꾸미고 있는 것을 알아내려 한다.

가족처럼 일하는 정미소 사람들과 곱단은 한글강습소를 소개하기위해 찾아온 최현배를 만나게 되나 글을 배운다는 것이 탐탁치만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습소로 모이게 되고, 한글배우는 재미에 빠지게 된다. 최현배를 통해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곱단은 최현배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깊어진다.

한편 조선민족말살정책을 펼치던 일본순사들은 정미소로 들이닥치게 되고, 정미소 사람들과 최현배는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말을 모우기로 한다.

말모이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더욱더 심해진다. 일본순사의 감시를 뚫고 말을 모아온 사람들 그러나 곱단은 다나까, 미끼로에게 쫒기게 되고...

10. 티켓가격 :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

11. 예매문의 : 꽃바위문화관 209-4330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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