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날까지 농사일을 돕고, 결혼 후에는 평생 남편의 술주정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찾아온다고 하십니다. 이에 아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우리 엄니, 치매 걸리셨나? 아버지는 진즉에 돌아가셨잖아.'라고 하지요. 아들의 성의 없는 대답에 어머니는 또 그러십니다. '내가 치매에 걸려서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라고요. 당신을 그리도 괴롭힌 남편인데도 볼 수만 있다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책은 오카노 유이치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입니다.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이 일하던 지역신문 귀퉁이에 실었던 네 컷 만화를 모은 것입니다. '페코로스'란 작은 양파라는 뜻으로 둥글둥글한 몸매에 머리가 벗겨진 작가의 별명입니다. 작가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출판사에 다니다가 '이런저런 사연'으로 아이를 데리고 낙향하여 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그러던 중 술을 사랑하고 술버릇이 고약하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 이후 어머니는 서서히 치매증상을 보이시게 됩니다.

 '치매'라는 단어를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으로 저하된 것'이라고-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이-되어 있습니다. '대뇌의 질환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지능이 아니'시게 된 어머니는 불이 날까봐 집 안의 코드란 코드는 죄다 뽑아놓고 텔레비전이 안 나온다고 혹은 냉장고가 오줌을 싼다고 아들을 부르십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아와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고 엎드려 빌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그런 말 말라 하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등불축제 구경도 가시고 반찬 사러 장에도 다녀오십니다. 어머니의 시간은 자꾸 뒤섞여서 결혼하기 전의 자신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나이 드신 어머니의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라고(실은 '편안하고 환한 낯짝을 하고 계셔서'라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낯짝이라니 버릇없게'라고 중얼거리시지요)합니다. 젊은 날의 자신이 다녀갔다는 말을 아들에게 하시면서 '영감이 술주정 심하다는 얘기하고 큰아들이 대머리 된단 얘기는 안 했다'고 하셔서 픽 웃음이 터집니다. 그 웃음 끝에 슬그머니 눈물이 고입니다. 책 어디에서도 독자들에게 슬픔을 느끼라고 강요하거나 권하지 않는데도 웃으며 읽다보면 차곡차곡 눈물이 쌓였다가 툭 떨어집니다.

 작가는 이 작은 책이 치매 부모를 돌보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만을 간절히 빈다고 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니다. 어머니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합니다.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겨 놓고 돌본다는 말이 염치없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선한 마음이 스며있는 따뜻한 만화입니다. 하루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부모님의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책입니다.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가 부모님의 나이 드신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면 오진희 글, 신영식 그림의 <짱뚱이의 나의 살던 고향은>은 우리 부모님 혹은 좀 더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책입니다. 주인공인 짱뚱이는 할머니가 오신다는 소식에 버스가 먼지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고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이고 오신 보따리를 서로 들겠다고 언니랑 싸우기도 하고, 나무 하러 산에 가시는 아버지 따라 갔다가 간식으로 싸 간 누룽지를 혼자 다 먹도록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큰 소리로 울기도 합니다. 말썽꾸러기에 이리 저리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통에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어다는 '짱뚱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주인공을 따라 다니다 보면 가난하지만 풍요로웠던 그 시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곧 단풍이 곱게 예쁘겠지요. 그 단풍 속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 부모님의 얼굴도 곱게 물들겠지요. 그러면 우리 마음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죄송함을 덜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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