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람이 커튼 자락을 흔들기도 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를 길게 잡아 늘였다 놓아주었다 합니다.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가을이 깜짝 선물처럼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것 같습니다. 사실 뜨거운 여름보다는, 가지 말라고 매달리고 싶은 가을이야말로 여행하기에 가장 적격인 계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휴가철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여행 관련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행이라고 하니까 지난 여름('지난'이란 말을 붙이게 되어 무척 기쁘군요)에 다녀왔던 사람들로 북적이던 계곡이나 목욕탕을 방불케 하는 해수욕장 혹은 텔레비전을 애인 보듯 하루 종일 넋 놓고 쳐다보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피곤했던 여름 휴가여행 말고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행하고 사진 찍고 글 쓰는 사람' 이민학과 '칼럼 쓰는 여행홀릭, 강의하는 카피라이터' 송세진이 함께 엮은 <쉼표 여행>은 제목 앞에 '문득 떠나고 싶은 순간. 비우고. 채우고. 머무는.'이라는 수식어를 가지런히 붙여놓았습니다. 좀 더 사족을 붙이자면 무언가 복잡하게 느껴질 때 훌쩍 떠나서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비우고, 그 빈자리에 더 많을 것을 채우고, 그 좋은 기운으로 내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여행을 소개 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작가는 여는 글에서 '여행지보다는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말문을 엽니다. 여행은 '새로운 활력을 주고 삶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힐링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내가 마음을 여는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또 작가는 평일에 혼자 하는 여행을 권합니다.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며 한층 더 활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평일에 여행을 다닐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 최대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하고 '여행의 방법'까지 덧붙여 소개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여행지를 같이 소개하고 있어 독자가 여건에 맞춰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첫머리에는 여행지를 아름답게 찍어놓은 사진이 두 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일단 감탄을 하고 다음 장을 넘기면 작가가 직접 걸어보면서 만났을 풍경들, 소리들, 작은 꽃들이며 작가의 소소한 생각들이 가득합니다. '봉화 청량사' 편을 보면 청량사 가는 길을 잠시 안내한 뒤 '이리 일러주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 길을 어찌 말로 담을 수 있을까....(중략)...말이 끊어진 자리. 그 길이 그런 길이다'라고 합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겠다면서 '말이 끊어'졌다니요.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이 말이 청량사 가는 길에 대한 어떠한 설명보다 그 곳에 대한 작가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는 듯합니다. 또 '청량산의 사계를 알면 내가 어디쯤 살고 있는지 알 것 같다'라는 작가의 글을 들여다보면 사진과 글로 만나는 청량산이 어느새 내 마음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 사이사이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찍었을 작은 스틸 사진 또한 보는 이의 눈을 환하게 해주는 느낌입니다. 글이 마무리되면 바로 옆자리에 '비슷한. 그러나. 다른 여행지.'라는 소제목 아래 앞서 소개한 여행지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곳들을 간단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청량사 편에서는 소백산의 비로사, 완주 황암사, 순천 선암사와 송광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청량사 대신에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곳 모두 돌아보고 싶다 그런 소망을 가지게도 합니다. 여행지를 좀 더 돌아볼 수 있도록 일정을 안내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와 음식점을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쉼표 여행>을 읽다 보니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곽재구 시인의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묶인 글들은 내 삶의 일정한 부분 동안의역마의 기록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책이 '마음의 여행, 정신의 여행을 원하는 친구들에게'읽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기행산문집이라는 말에 걸맞게 책은 아름다운 사진보다는 곽재구의 아름다운 글로 가득합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사진은 흑백사진 한두 장이 전부이고 여행을 시작하면서 마무리 할 때까지 그가 떠올린 생각들, 사람들, 그 고장에 얽힌 역사적인 이야기,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 중에 작가가 읽은 시까지. 보는 것만으로 감탄이 나오는 멋진 사진 없이도 작가가 만난 여행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변색을 시작한 수국 꽃송이들이 매미 울음소리에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고', '언뜻 절집의 역사를 짐작케하는 이 꽃나무들은 목하 사바 세계와 열애중이었다'와 같은 아름다운 표현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간격으로 두고 출간된 두 책은 겉모양부터 무척 다르지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언젠가는 여기에 담긴 곳들을 내 머리에 내 가슴에 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하는 책.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왔기에 이 가을을 맘껏 즐길 권리가 충분한 여러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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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킹맨 2013.10.04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웠던 여름이지만,마음이 시원해 지는 것 같습니다..^^좋은책 추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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