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본래 울주(蔚州)가 변한 지명이다.

 『삼국사기』에 "하곡현(河曲縣)은 파사왕 때 굴아화촌(屈阿火村)을 빼앗아 현을 설치한 곳인데, 경덕왕이 고친 이름으로 지금의 울주(蔚州)이다."라는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 (蔚山)에는 "고려에서 울주군(蔚州郡)으로 고쳐 현종 9년(1018)에 방어사를 두었고, 조선 태조 6년(1397)에 비로소 진을 설치하고 병마사로서 지주사(知州事)를 겸하게 하였는데, 태종 13년(1413)에 진을 폐지하고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로 고쳤다."라고 하여 이때에 비로소 울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31년(1598)에 울산도호부로 승격되고 병마절도사 겸 부사를 두었다.

 1997년 울산광역시로 승격하여 경상남도에서 분리되었고, 울주구는 울주군으로 개칭하였다. 2001년 온양면과 범서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여 4개 구, 1개 군, 4개 읍, 44개 동을 관할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굴화명 기와 : 중구 태화루부지 유적)

 

삼한 ~ 고려시대 울산지명

 

(출처 : 울산택리지, 한삼건저, 2011년)

 

 울산지역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한 가운데 진한에 속한다.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 하대 유적에서 청동솥〔銅鼎〕을 비롯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 유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우시산국의 중심지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신라시대에 우화촌·우풍현으로 불렸는데, 이는 우시산(于尸山)이란 지명과도 상통하고 있다.

 ''는 바로 'ㄹ'로 사용됐는데, 울산이란 지명의 연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울산지역은 삼한시대 소국에서 신라로 통합되는 시기를 3세기 ~ 4세기 전반대로 추정되며,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관문역할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제5대 파사왕대 범서지역에 있던 굴아화촌을 취한 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굴아화현 및 임관군의 동진현(東津縣, 지금의 동구와 북구 강동동 지역)·생서량군(生西良郡, 지금의 서생면 지역) 등지에 치소를 두었고, 경덕왕 16년(757)에 굴아화현은 하곡현(河曲縣, 일명 河西)으로

 개칭하였으며 임관군(臨關郡)에 소속되었다.『삼국사기』잡지 34권(고려 인종 23년)

 고려시대에는 태조 때 하곡·동진·우풍(전 우화)의 3현을 합하여 흥려부로 승격하여 임관군의 관할에서 벗어났다. 오늘의 울산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성종 14년(995)에는 흥려부가 공화현으로 격하되었다가 현종 9년(1018)에 울주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래현(東萊縣)·헌양현(ニ陽縣, 전 居知火縣)·기장현(機長縣)을 관할하였다. 『고려사』지리지(조선 문종 1년)

 인종 21년(1143)에 울주에서 동래현, 기장현, 언양현로 분리되어 그 지명이 조선시대로 이어진다.

 

(출처 「고려사」 지리지 울주)

 

조선시대 울산지명

 

(출처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지명관련 기사)

 

 울산은 조선 태종 13년(1413) 10월에는 울주를 울산군으로 개편하여 좌병영을 두었고 태종 18년(1418)에는 염포항이 개항되어 왜인이 거주하였다.

 

 (울산염포지도(1474년), 울산광역시시사(자료편), 울산광역시시편찬위원회, 2002년)

 

 임진왜란 때 왜적 토벌에 울산 읍민들이 공이 컸기에 선조 31년(1598)에는 울산군이 울산도호부로 승격하여 언양현을 영속하였고, 효종 2년(1651)에 하미면을 기장현에 이관하였다. 고종 32년(1895)에는 울산도호부가 울산군이 되면서 울산군과 언양군으로 분리되었다.

 

 (울산·언양지도, 靑丘要覽 1863~1907)

 

 울산 지역을 묘사한 군현지도가 20종 이상이 되는데, 『세종실록』지리지(단종 2년, 1454), 『해동지도』(18세기 중엽), 『여지도』(1736~1776),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 1530)에 울산 지역 내 각 지명을 비롯한 자연환경과 인문 지리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해동지도』는 331개 군현을 비롯하여 전체 370점의 지도를 8책에 수록한 군현지도책으로 주기를 지도의 여백에 기록하여 호구 등 지지적인 내용을 지도와 동시에 파악 할 수 있다.

 『여지도』는 6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채색 필사본 지도책으로 지도에 산천, 성곽, 군현의 옛 이름과 별호를 기록하여 고을의 연혁을 알 수 있게 하였다.

 

 

/현대의 울산

 

 1895년 전국을 23부()로 개편하면서 울산부와 언양현은 각각 군이 되어 동래부 관할에 속하였다. 이듬해인 다시 13도()제를 시행함에 따라 경상도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누어지고 울산과 언양은 경상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해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언양은 군에서 격하되어 울산군의 한 면이 되었다.

 

 (호적표(1907년), 울산군 지명)

 

 1931년 울산면이 울산읍으로 승격되었고, 1937년 동구 방어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울산읍 지도(1930년), 울산읍 지명)

 

(울산읍지, 1934, 울산읍 지명)

 

 1962년 1월 27일 각령 제403호로 울산군의 울산읍·방어진읍·하상면·대현면 전체와 농소면 송정·화봉리, 청량면 두왕리, 범서읍 무거리·다운리를 울산 특정공업지구로 지정·공포한 이후 동년 6월 1일 법률 제1068호(1962, 5, 10 공포)로 울산시로 승격하고, 울산군은 울주군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1985년 중구청과 남구청을 설치하고 1988년 1월 1일 동구청을 설치했으며, 1991년 1월 1일 법률 제4274호로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하였다.

 1996년 12월 31일 울산광역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공포(제5243호)하여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가 출범하였다. 울산공업지구 지정부터 역사적인 변화를 거쳐 본격적인 울산의 근대화가 진행되었고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해 왔다. 오늘날 울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산업 근대화의 전진기지가 되어 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산업수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도시로 나아갈 것이다.

(1997년 울산광역시 승격)

 

 울산 지명 연혁

 

 울산 지명 유래

 『삼국사기』<열전>에 거도(居道)라는 변방을 지키는 관리가 나온다.

 그는 신라 4대 왕인 탈해이사금 무렵, 이웃 지경(地境)에 있는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 지금의 동래)이라는 두 성읍국가로부터 큰 위협을 받자 이들을 병합할 목적으로 '마숙(馬叔)의 놀이' 즉, 해마다 한 번씩 장토(張吐)라는 들판에 말을 모아놓고 장정들이 말을 달리며 즐겨 놀도록 한 놀이로, 해마다 실시하여 두 나라의 경계심을 풀어놓은 틈을 타서 불의의 기습으로 결국 멸망시킨다. 이 두 나라는 삼한시대의 진한에 속해 있었다. 울산이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우시산국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짐작되고 있다.

 옛날지명 중의 '尸' 는 이(履)의 약(略) 자이기도 하며 'ㄹ'음의 표시로도 썼으므로, 여기의 于尸山은 즉, 우(于)와 시(尸)가 합쳐져서' 울'이 되는데 우리말' 우리(울, 울타리)'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므로, '于尸山'은 '산이 울(울타리)처럼 둘러싼 곳'이란 의미로 풀이하여 '울산(蔚山)'이란 이름이 생기게 된 것이다. 현곡 이유수 선생은 고려 초에 우풍현, 하곡현, 동진현, 동안군(지금의 서생면 지역, 원래는 신라의 생서량인데 고려 현종 9년에 울주에 합속) 등 네 고을을 합쳐서 '울주'라 이름 붙인 것은 이 지역의 중심에 있는 명산 '우불(于弗)'에서 이름을 땄기 때문이라 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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