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해서 어느 사이엔가 한 낮의 태양이 참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졌습니다. 나무의 초록은 점점 짙어지고, 햇살은 나뭇가지에 걸려 수도없이 구부러지고, 잠자리 떼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날개짓하는 여름. 분명 뜨거운 여름햇살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에게 시련이겠지만 식물들은 이 시련을 기꺼이 온 몸으로 껴안아 제 속살을 충실히 키워낼 것입니다.

 

 박웅현의 <여덟단어>,<책은 도끼다>

 박웅현의 《여덟단어》라는 책을 보면서 시장 노점상 할머니의,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바구니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잘 팔리게 하려고 어떤 수도 쓰지 않고 햇살과 물 그리고 온전히 할머니의 노동으로만 길러 낸 그런 야채 말입니다. 모양은 좀 그렇더라도 싱싱하고 맛이 좋을뿐더러 미안할 정도로 가격도 싸지요. 작가가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를 걸러내기 위해서 바쳐진 시간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앉아서 편안히, 그것도 인터넷 서점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사서 읽다보니 할머니의 야채를 별 수고 없이 사서는 맛있게 먹기만 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출처/북하우스'책은도끼다'

 박웅현이 말하는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입니다. 몸으로 터득하고 정성껏 키워낸-사실은 강의한 내용을 다시 책으로 묶어낸 것이니 말이라고 해야 옳을 지도 모릅니다. 20명 남짓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매우매우 부럽더군요-은 마음 깊은 데까지 닿아서 마음을 건들고 다짐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인생을 잘 사는 비법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귀 기울여 주시되 큰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그는 독자들이 '돈오점수(頓悟漸修)'하기를 바랍니다. '갑작스럽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차적으로 수행해 가라'는 것이지요. 인생은 그의 말대로 드라마처럼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첫 번째 단어 "자존"은 '기준점을 바깥에 두는 교육'을 받고 자라 '남과 다르면 불안감이 밀려드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두 번째 단어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중에 피카소의 <the bull>이라는 그림을 소개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인 소 그림을 빼고 또 빼서 결국 한 줄의 선으로 표현됩니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 그래서 결국 남게 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그 본질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단어인 "고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본질이라는 단어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고전은 시간을 이겨낸 것들입니다. 고전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즐길 대상이라고 말하면서 깊이 보고 들으려고 노력하라고 당부합니다. 덧붙여 우리가 탐내는 소위 명품은 명품이 아니라 고가품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기왕 이야기한 김에 나머지 단어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야기해 볼게요. 네 번째 단어 "견()"에 대한 부분에서는 '시청(視聽)'하지 말고 '見聞'하라고 합니다. 흘려 보고 듣지 말고, 깊이 보고 들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합니다. 다섯 번째 단어인 "현재"에 대한 부분은 부제부터가 가관입니다. 아무 거리낌도 없이 떡하니 '개처럼 살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무슨 소리야 불평이 나오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밥을 먹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주인에게 반갑다고 꼬리를 치거나, 잠을 잘 때조차도 그 순간에만 집중하면 '개처럼 살자'는데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여섯 번째 단어입니다. "권위". 단어만으로도 중압감이 느껴지는데 작가는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말자'고 합니다. 불합리 한 게 당연한 것 같고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게 편할 것 같은 이 시대를 살면서 작가는 '옳은 게 이긴다는 걸 믿으세요' 라고 말합니다. 일곱 번째 단어인 "소통"은 요즘 우리나라에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장만 하지 말고 제대로 전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단어인 "인생"은 앞 서 얘기한 단어를 아우르는 것입니다. 최인훈 작가의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全人未踏)'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도 밟지 않은 땅처럼 우리만의 것입니다.

출처/북하우스'여덟단어'

 

 같이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같은 작가의《책은 도끼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작가가 책을 읽고 느낀 '울림'을 '공유'하기 위한 글들로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박웅현은 이 책을 쓴 이유가 울림을 공유하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울림을 준 책을 사게 만드는 것'이 또 다른 목적이라고 말하는데요. 책을 읽고 나면 저도 모르게 인터넷 서점을 뒤지게 됩니다.

 맛있는 책이라 조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박웅현의 책을 읽고 그의 말대로 깊은 울림을 공유했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박웅현의 책이 할 일은 우리를 말랑말랑하게 해서 '씨앗이 틀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가 이야기한 음악, 그림, 책, 자연현상 등을 '견문'하고 나아가 내 것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벌써 시작됐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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