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쨍쨍한 햇볕아래 더위에 힘들어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더운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시원한 바다가 제격 아니겠습니까. 울산누리가 어제 알려드린 대왕암코스에 이어 오늘 알려드릴 곳은 바로 몽돌이 유명한 주전 몽돌해변을 따라 우가산 봉수대까지의 해안명소 코스인데요!! 몽돌이 있어 더욱 시원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해안명소 코스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울산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해안 명소!! 두번째로 알려드릴 곳은 바로 주전봉수대와 주전해변, 강동축구장과 우가산봉수대입니다.


등 록 번 호 :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
문 화 재 명 : 주전봉수대
소   재   지 : 울산 동구 주전동 산 192-2 외
지   정   일 : 1997년 10월 09일

 


봉수대는, 사방이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인근 봉수대와 서로 연락하여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과 해당 진영(鎭營)에 알리던, 옛날 군사통신 수단의 하나였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제도인 듯하나, 그 체제가 정비된 것은 조선 세종(世宗) 때였습니다.


 오장(伍長)과 봉군이 배치되어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렸다고 하는데, 1894년(고종 31년)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되었습니다.  이 봉수대는 천내(川內)에서 봉수를 받아 유포(柳浦)로 전했는데요. 이 곳에는 돌로 둥글게 쌓은 연대(煙臺)가 남아 있는데, 이 대(臺)의 지름은 5m, 높이가 6m입니다. 지금 봉호사가 있는 자리는 이 봉수대의 부속 건물인 봉대사(烽臺舍)가 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1981년 유적정비사업을 완료하였습니다.



소   재  지 : 울산 동구 주전동 
32-53 일원 

 강동해변과 더불어 울산이 자랑하는 절경 가운데 하나, 주전해변의 밤 풍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어촌과 포구의 아득한 불빛과 해변을 다라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카페들이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주전해변은 아담한 백사장도 있고 검은 몽돌이 발아래 간지럽히듯 밀려오는 파도에 닿는 감촉은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이곳은 스킨스쿠버들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연초가 되면 주전봉수대에서 해돋이를 보기위한 인파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생선회가 팔딱 팔딱, 주전동 회촌]

 주전동은 울산 앞바다 부근에서 바닷물이 가장 깨끗하고 횟감을 직접 잡아오는 고깃배를 띄우는 어촌이라 회맛이 일품입니다. 주전동은 바닷가에 연이은 어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정암, 감방등, 깜박돌, 나무내친돌, 어랑들, 돌방, 물매기, 벼락방우, 복새돌 등으로 이름 붙여진 기암괴석들이 바닷가를 꾸며주고 있어 마치 축소한 해금강을 연상케 하죠.


[드라이브 코스 제안]

 
 효문동에서 강동으로 가서 주전으로 돌아오거나 남목에서 강동으로 가서 효문동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은 없으니까. 특히 해가 진 뒤에 돌아 올 계획이라면 남목-주전-정자-효문 코스가 제격입니다.
 
이 코스는 해안길을 오랫동안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어물동마애여래좌상, 주전봉수대 등의 문화유적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   재   지 : 울산 북구 (당사동 산 174-14)
연   락   처 : 052-202-2114

 현대중공업(주)에서 건립, 관리하고 있는 강동축구장은 잔디구장 2면에 60여대의 차량을 주차할수 있는 주차장과 화장실, 락카룸, 산책로가 있습니다. 국가대표, 현대호랑이 축구단이 훈련전용으로 이용하는데요.

* 수용인원 : 2,500명
* 경 기 장 : 115m×80m(2면)
* 필      드 : 105m×68m
* 부대시설: 라카룸1 관리창고1 파고라3 원두막4 연못1

 

구         분 : 기념물
등 록 번 호 :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3호
문 화 재 명 : 우가산 유포봉수대
소   재   지 : 울산 북구 당사동 320 외
지   정   일 : 1998년 10월 19일
 

  


오장(伍長)과 봉군이 배치되어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렸다고 하는데, 1894년(고종 31년)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 되었습니다. 
이 우가산 유포 봉수대는 동해안에 위치하는 연변봉수(沿邊烽燧) 가운데 하나로 남목천(南木川: 현재의 주전)에서 봉수를 받아 경주 하서지(下西知)로 전했습니다.
 자
연석으로 쌓은 둥근 모양의 아궁이와 주위의 방호벽, 봉수군 막사터가 잘 남아 있어서 우리나라 연변 봉수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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