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갔다가 볼 일을 보러 온 부부를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두 사람이 똑같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부를 보면서 저런 사람들이 사는 집안 분위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뭇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식탁에 마주앉아 김치를 아삭아삭 씹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쿡 터지더군요. 어두운 표정의 부부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인상을 쓰는 거지. 옆에 있는 사람까지 기분 나쁘게'라며 투덜거리는 대신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 있어서 같이 읽어보려 합니다. 삶이라는 게 즐겁고 행복하기 보다는, 힘들고 마음에 쉭쉭 가느다란 상처가 수도 없이 생기는 것이긴 하지만 왠지 '흠~~이 정도면 살아볼만 하겠는 걸.'이라고 생각하게 된달까.

어때요, 조금 궁금해지셨나요.

 

처음 소개할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앙앙》이라는 잡지에 1년간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입니다.

《앙앙》은 소녀취향의 잡지로 우리나라 연예인들 화보가 실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루키는 독자들과 '공통된 화제 따위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쓰고 싶은 것을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에세이를 쓰는 하루키와 소설을 쓰는 하루키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에세이 속의 그의 문체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가볍고 편하게 다가오지만 그 속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그런 문체라고 할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수필의 문체와 소설의 문체가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책의 제목인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첫 번째 글 '잊히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잠들기 직전에 좋은 화제가 떠오르는데 메모를 하지 않아 다음날이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메모를 하지 않는 이유가 졸려서인데 자신이 졸리지 않는 경우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큼이나 드물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재즈가 카페나 술집의 배경음악으로 쓰인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면서 그것을 '그러고 보니 식의 깨달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말장난처럼 느껴지지만 생각해볼수록 참 적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 표현입니다. 하루키의 수필은 재미있는 표현만 많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줍니다. 폴 서루의 아프리카 종단여행기인 《아프리카 방랑》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죽도록 지루한 대화'편에서는 폴이 '혼자 벽보고 있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영어를 잘 하지만) 지루한 사람과 대화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더 나아가 영어를 통용어로 삼으려는 움직임에 대해 영어 자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야 폴과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두 번째 책은 역시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입니다.

역시 예의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으로 작년에 출간된 것입니다. 제목만으로도 뭘까 궁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궁금하시라고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할 작정입니다)

 두 번째 책도 하루키의 밝고 경쾌한 에세이가 가득합니다. 글 중에 '딱 좋다'편을 읽어보면 왜 하루키의 글에서는 그의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루키는 진짜 아저씨가 돼 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면서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가 '딱 좋다'라고 말합니다. '이쯤이 딱 좋네'하고 여유롭게 생각하면 자신이 아저씨든 아줌마든 나이에 상관없이 '딱 좋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딱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하루키의 수필집을 소개하다 보니 소개하는 글투도 어쩐지 한 옥타브쯤 올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를 하게 되는군요. 하루키의 수필집은 이 외에도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와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 <세라복을 입은 연필>, <랑겔한스섬의 오후>가 있습니다. 모두 책장에 꽂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볼 만합니다. 기분이 좋아지고 모든 게 '이정도면 괜찮을 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요. (그렇다고 제가 출판사 관계자는 아닙니다. 다 아시지요.)

참, 하루키의 글에 곁들여진 오하시 아유미의 그림도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듯하면서 글에 꼭 맞춤한 것 같은 그림입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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