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의 큰빛 언양 구원을 찾아온 길

(울산 대곡박물관 - 2013 130~331)

 

 

대곡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천주교의 큰 빛, 언양(彦陽) -구원을 찾아온 길-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언양지역의 천주교 유물과, 박해받던 신도들의 애환이 서린 이번 전시는

특정 종교의 관심사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변동과정과

지역문화의 다양성에 관심을 가져보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대곡박물관 특별전 "천주교의 큰빛 언양" 동영상으로 보기>  

 

 

 

 

한국에서 천주교는 17세기 중반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조선에 알려진 후

선교사가 파송되지 않고 신앙으로 승화한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역사를 갖고있다고 합니다.

 

 

 

 

 

후미에

십자가에 박혀 매달려 있는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제 또는 금속 성화상.

천주교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밟고 지나가게 하여, 이에 불복하면 기리시탄으로 간주되어 체포했으며

1629년에 도입된 방법은 230 년간 지속되었다.

 

 

 

마리아 관음

천주교를 박해하던 당시 기리시탄들이 만든

관음보살의 모습을 마리아상.

 

 

 

학문에서 신앙으로 - 자발적 신앙공동체의 출발-

 

            북학의(좌)  열하일기(우)

 

중국과 일본이 16세기 중반부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천주교가

전해진데 반해,  조선에서는 17세기 중반이후 서학西學이라는 학문으로

조선의 젊은 유생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초기에는 서학의 과학성과 실용성만을 수용하고자 하는 입장도

있었으나 점차 진지한 신앙의 대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처럼 조선에서 천주교가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신앙으로

발전된 것은 다른 나라에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와의 갈등과 박해 그리고 천주교의 확산 -

1784 이승훈이 북경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이벽 등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루면서 조선에서 천주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이들의 신앙모임이 적발되고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천주교가 남녀. 귀천을 무시하고 무군무부(無君無父)라는 이유로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천주교신자들의 고문하던 박해 도구들

 

황사영 백서

황사영이 1801 당시 천주교회의 박해현황과

그에 대한 대책 등을 북경의 주교에게 건의 보고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압수당한 장문의 비밀문서.

 

 

언양, 천주교의 마지막 성역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더욱더 깊은 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언양은 그들에게 마지막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언양지역은 신유박해(1801) 언양 지역 초기 천주교 신자였던 오한우가 순교하고 김교의가 간월산으로 피신하여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경상도 지역에서 모여든 천주교 신자들로 많은 교우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교우촌 분포도>

 

교우촌의 생활과 일상

산으로 둘러싸인 언양 인근의 깊은 산속에 신앙공동체인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일요일이면 회장을 중심으로 남녀가 함께 참석하는 예배를 거행하였습니다.

생계를 위해 옹기와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척박하게 살면서도 기도와 교리를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선필공소 신도들

 

 상선필공소 신도들

 

 현재의 하선필공소 (2012年)

 

 현재의 상선필공소 (2012年)

 

☞ 요기서 잠깐~!!

착한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사는 마을 "선필마을" 답사  포스팅 보기 http://blog.ulsan.go.kr/2128

 

 

 

 죽림굴 미사

순교성인 유해

남종삼,다블뤼,김대건, 세명의 성인의 유해와

순교자 김범우와 최양업 신부의 부친(최경환) 유해.

 

 

십자가무늬 옹기

옹기제작은 박해시대 가장 대표적인 경제활동중 하나였으며

옹기를 구울 있는 한적한 산골은

박해를 피할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했다.

또한 옹기에 십자가상, 성수와 같은

성물을 감추기에도 적합했다.

 

 

 

 

 살티공소 신도들

 예배당 혼배성사 (1927년)

 

 

언양성당 건립

1886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자 산속에 숨어살던 천주교 신자들은 마을로 내려와

초기 신자들이 닦아 놓은 터전위에 점차 교세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1926 12 언양본단은 부산진 본당에서 독립하여 초대 본당 신부로 에밀보드뱅 신부를 맞이했습니다.

▲ 정도평(에밀 보드맹)안주교 문주교 (1935년)

 

 

 

 

 

 건축중인 언양성당

 언양성당 축성식

 언양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제작된 부산교구 유일의 석조 건물로 현재 등록문화재 103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전시는

(1)대항해 시대, 동아시아 천주교를 만나다,

(2)조선의 백성, 피안과 구원의 가시밭길,

(3)언양, 천주교의 ,

(4) 속의 새로운 신앙공동체, 언양의 교우촌,

(5)신앙의 자유 5부로 구성돼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언양지역과 천주교 관련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실물자료가 전시되어있어,

많은 천주교 신자분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공공박물관에서 종교에 관한 전시는 최초라고 하는데요,

종교의 관심사를 떠나 서부 울산 지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이며

현재까지 언양읍상북면두서면 일대에는 천주교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3 31일까지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대곡천 천전리각석도 돌아보고 전시구경도 꼬옥~하고 가세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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