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주요 목조문화재 합동 소방훈련 실시
누리 GO/누리생활정보2013. 2. 14. 16:55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라는 질문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상식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낮은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간혹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국보 1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기억에 남습니다.

 


 남대문 화재는 지난 2008 2 10일 저녁에 일어났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당시,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던 한 사람의 방화로 남대문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출동신고 5분만에 소방차들이 도착하였지만 결국 남대문 본연의 웅장함을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초동 대처 능력 미숙이다, 물을 잘 못 발사하였다 등 책임 논의도 많았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씨가 나와서 남대문 화재에 관하여 언급한 바가 있는데요. 일반 건물과는 다른 문화재의 구조를 잘 몰라 많은 양의 물을 뿌렸음에도 불길이 잡히지 않은 문제, 불을 끄기 위해서는 기왓장을 깨고 불을 꺼야 하는데 소방관 들은 문화재를 파괴할 수 없었다는 문제 등이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하여 남대문 화재를 접하였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무너지는 지붕과 누각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꼭 5년이 지났습니다. 현재 남대문은 복원 작업이 한창인데요. 오는 4월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원된 남대문이 반가운 동시에 예전에 보아왔던 남대문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문화재를 후손들에게 보전해서 물려 줄 책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특히나 불에 타기 쉽고, 오래될수록 연약한 목조문화재의 경우에는 화재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소식은 울산시가 제3의 문화재 방재의 날을 맞아 14일부터 26일까지 주요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소방서, 경찰, ·군과 합동으로 소방훈련을 진행 한다는 것입니다. 울산향교, 이휴정, 박재상 유적지, 박상진 의사 생가, 동축사 등이 대상입니다.

이번에 소방훈련을 진행하는 유적지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울산향교

조선시대 향교 건물. 선조(재위1576~1608)때 반구동 구교마을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지게 되어, 효종 3(1652)에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공자와 유학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대성전, 명륜당(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 동무와 서무(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청원루, 전교실, 전사청 등이 남아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며 초하루와 보름마다 분향을 한다.

 

이휴정

원래는 울산 도호부 객사였던 학성관의 남쪽 문루인데, 지금은 정자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객사란 지방에 출장간 관리나 외국 사신이 얼마간 머물던 곳을 말한다. 태화루라 불리기도 했던 이 건물은 일제시대 말에 도서관을 겸해 사용해 오다가 1940년에 울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울산초등학교)의 교정을 넓히면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짓게 되었다. 옮겨 지을 당시, 학성 이씨 월진파의 정각이었던 이휴정의 이름을 빌려왔고 건물도 정자 형식으로 일부 고쳐 지었는데, 누 아래쪽 양쪽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듦으로써 문루 형식에서 정자 형식으로 완전히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부재와 건축 수법이 조선 후기 문루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003 9월 화재로 전소되어 2005 6월 복원되었고 2007 11월 단청 보수 완료하였다.

 

박상진 의사 생가

독립 운동가로 활약하던 고헌 박상진(18841921)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박상진은 비밀 결사대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총 사령관으로서 광복을 위해 활약한 분이다.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 등 여러 부속 건물을 ㅂ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마루와 방을 갖추고 있으며 뒤의 중문을 지나면 ㄱ자형 안채가 있다. 남녀의 공간을 작은 문으로 간단히 구획하여 각각의 공간에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동축사

동축사는 『삼국유사』의 황룡사 장륙조에 의하면, 인도의 아육왕이 인연 있는 국가에서 장륙존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여 황철 5 7천근과 황금 3만분을 배에 실어 띄울 때 함께 보냈다는 1불과 2보살의 상을 모시기 위하여 신라 진흥왕 34(573)에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그 후 경순왕 8(934), 고려 정종 때, 조선 세조 3(1457), 1931, 1975, 2005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동축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통양식인 중층기단 삼층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이 탑의 기단은 면석이 모두 없어져 원래의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네 모퉁이에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지붕돌의 받침은 1·2층은 5단이나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보개만 얹혀 있는데, 돌의 재질이 탑신부와 다른 사암계통이어서 이 석탑이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졌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현 위치로 옮겨 기단부의 일부 부재를 첨가하여 복원 하였다.

(문화재 설명 출처 : 다음 문화유산)



 

문화재를 평생토록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연스럽게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결국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화재와 같이 예방할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재난으로부터 우리의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다음 세대들도 이 문화재를 통해 옛 선조의 얼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남대문과 같은 참사가 없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