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추웠다가 어느 낮에는 더없이 부드럽게 따뜻한 요즘입니다. 오락가락하는 추위 속에서 아직도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추위에 적응하지는 못한 몸과 함께 납작 움츠러듭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따뜻한 눈빛 나누고 싶은 이 시기에는 누군가의 다정함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더 이상 새롭게 만나볼 수 없다는 섭섭한 마음도 보태어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의 예쁜 것'에 담긴 다정한 글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박완서 작가. 그의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하니 한 장 한 장 쉬이 넘기고 싶지도 않고, 선뜻 책을 다 읽어치운다는 느낌을 조금도 내고 싶지 않아 아주 천천히 독서를 즐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작가가 차곡히 모아 둔 미발간 산문들은 그가 돌아가신 후에 그 딸이 어머니의 책상 정리하다가 발견하여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절치 못하고 청탁받은 수많은 원고, 그 길고 짧은 글 어디에서나 작가의 위엄을 잃지 않으며 공들여 빚어낸 정성이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을 참 좋아했는데, 이 산문들을 통해 그 소설과 글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삶 면면이 알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굴곡의 세월 속에서, 때론 그 안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복수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그는 마음을 한 풀 꺾은 후에야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야기가 풍성한 집안 내력으로 어릴 적부터 이야기의 힘 속에서 성장했으며, 철철이 아름다운 시골에서 자연과 뒹굴며 살았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자양분 삼으며, 피 비린내 서린 청춘 시절을 건너기도 했지만 나쁜 것은 쉬이 잊고 사랑받은 것은 오래 기억하는 성품 덕분에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는 작가의 삶이 참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온 글마다 정감 있고 다정스럽고 때론 비감하지만 무겁지 않게, 솔직하고 능청스러움까지 겸비한 오미자 맛 같을 수 있었구나 감탄합니다.

 남들 보다 늦은 나이, 40에 등단을 하고도 참으로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필요로 하는 여러 곳에 가서 쓴 글을 직접 읽거나 말하며 자신의 뜻을 전하기도 했던 것이 산문집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박완서 작가의 새로운 글을 만나볼 수 없을 테지요?

 소설가로서의 마음가짐, 글쓰기의 고통과 그 인내, 가족을 잃은 슬픔, 삶과 죽음에 대한 갈등, 일상의 소소한 기쁨, 그리고 깨달음. 지인들을 향한 소박한 고백과 마음들.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위로였음을...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책을 덮으며 그를 그리워합니다.

"그립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를 위로해 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박완서"

 박완서 작가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그리움을 위한 독서가 될 것이고, 아직 낯선 누군가에도 다정한 위안이 될 것입니다. 나날이 말라가는 늦가을의 낙엽에 마음을 쓸어 내리고 있는 당신에게는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위대한 작가의 소박한 삶의 방식에서 얻는 위안은 요 며칠 제 마음을 다독입니다.

 처음에 담담히 읽던 '세상에 예쁜 것' 이 어느새 '어머, 세상에, 예쁜 것' 감탄을 가득 담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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