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ㆍ일 월드컵 경기장인 문수축구경기장이 태양을 향하여 비상하는 학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울산체육공원은 스포츠와 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수산과 남암산을 배경으로 자연호수와 울창한 삼림이 어우러져 한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호수내 대형 고사분수와 수생식물이 무성한 생태학습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자전거용도로, 2002m호반산책로는 도심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한 입지성과 편리한 교통으로 인해 시민들의 여가활동과 체력단련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호수와 연접한 호반광장은 각종 공연과 전시, 문화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열린 공간으로 가족 및 친구, 연인들이 함께하는 시민 문화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울산체육공원 맞은편에는 최신 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문수국제양궁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경기가 없는 날에는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설화/전설

● 낭지대사와 보현수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영축산이 있다. 불가에서 제 10법운지라고 하는 이 산은 문수산의 바로 동쪽이 그 곳이다.
신라 문무왕 1년에 의상대사(義相大師)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지통(智通)스님이 있었다. 그는 17세 때에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하루는 까마귀가 말하기를 영축산을 찾아가 낭지대사(朗智大師)의 제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지통이 이 말을 듣고 영축산으로 가던 길에 마을 어귀의 나무 밑에서 쉬게 되었다. 이 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보현대사(普賢大師)인데 너에게 계품(戒品)을 주려고 왔다."며 계(戒)를 베푼 후 사라졌다. 기분이 좋아진 지통은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도중에 한 스님을 만나 까마귀의 일을 말하며 낭지대사의 거처를 물었다. 스님은 그가 바로 낭지(朗智)라고 일러주면서, 법당 앞에 까마귀가 와서 말하기를 "지금 성아(聖兒)가 올 것"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스님(낭지대사)은 성스러운 까마귀로 인해 서로 만나게 된 것은 산신의 도움이라며, 이곳의 산신은 변재천녀(辯才天女)라고 일러주었다. 감명한 지통은 대사에게 귀의하였다. 얼마 뒤, 계를 주려는 대사에게 "마을 어귀의 나무 밑에서 이미 보현대사의 계를 받았다"며 사양했다.
대사는 감탄하며 "지금까지 밤낮으로 지성(至聖)을 만나고자 원했는데, 지금 네가 이미 계를 받았으니 내가 너에게 미치지 못함이 많다"고 하였다. 이로써 마을의 나무를 보현수(普賢樹)라 하였으며, 율리(栗里)에는 지통골이란 마을이 있다.
하루는 지통이 대사에게 이 산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물어 보았다. 낭지대사는 "법흥왕 14년에 처음 왔는데,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고 화답하였다. 지통이 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문무왕 즉위년으로 이미 135년이 지나 있었다.

● 연회대사와 문수고개
청량면 율리의 문수산 자락에 있는 문수사는 신라 원성왕 때 연회대사가 창건했다. 기록에 의하면 문수산 아래에는 영취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인근 암자에서는 연회대사가 숨어살면서 보현관행(普賢觀行)을 닦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사찰 마당의 연못에 핀 연꽃이 시들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원성왕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연회를 모셔 국사로 청하려고 했다. 연회는 국사가 되는 것이 싫어 암자를 등지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서쪽 고개를 넘어 바위 사이로 넘어가고 있을 때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연회가 농부에게 자신이 암자를 떠나는 이유를 밝히자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한 연회는 농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시냇가에 이르러 이번에는 한 노파를 만났는데, 바로 변재천녀(辯才天女)였다. 변재천녀 역시 연회가 농부, 즉 문수보살의 조언을 듣지 않고 떠나는 것을 말렸다. 연회는 부끄럽고 놀라 급히 농부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이마를 조아리고 뉘우쳤다.
연회는 걸음을 돌려 사찰로 돌아왔다. 그리고 왕의 부름을 받들어 마침내 국사가 되었다. 연회가 농부에게 감동한 곳을 문수고개라 하고 변재천녀를 만난 곳을 아니고개(阿尼岾)라 한다.

● 영축사
영축사(靈竺寺)는 청량면 율리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절이다. 신라 제31대 신문왕 때에 충원공이란 재상이 있었다. 683년에 충원공이 부산 동래에서 온천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곡현의 굴정역(屈井驛ㆍ지금의 굴화역) 동지야(桐旨野)에 이르러 가마를 멈추고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웬 한 사람이 나타난 매를 놓아 꿩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꿩을 쫓아간 매가 보이지 않아 급기야 여기저기 찾아보게 되었다. 겨우 관아(官衙) 우물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우물 주변을 살펴보았다. 우물 안에 있던 꿩이 날개 밑에 새끼를 숨겼는데, 우물에 온통 핏빛이 감돌았다. 매도 꿩을 앞에 두고 잡으려는 기색 없이 다만 측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충원공은 아름다운 광경에 감동하게 되었다. 충원공이 일관(日官)에게 시켜 점을 쳤는데, 절을 지을만한 곳이었다. 이에 그는 관아(官衙)를 옮기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영축사라 하였다. 이 절의 용장전(龍藏殿)에는 원성왕 때의 고승 연회대사가 있었다.

● 무거와 김신암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장래를 영축산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르기로 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길을 나섰다.
먼저 태화사(太和寺)에 이르러 참배한 길을 나서는데, 동자승(童子僧)이 나타나 자신들을 인도하였다.
왕은 크게 만족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삼호 앞에서 태화강을 건너자마자 동자승은 자취를 감추었다. 왕은 그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깨닫고,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며 크게 탄식했다.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참살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며 고려에 국서를 보내 나라를 들어 바쳤다. 천년 사직을 쉽게 버릴 수 없다고 강변하던 마의태자는 그 길로 금강산에 들어가 마의(麻衣)와 초식(草食)으로 한 많은 여생을 보냈다.
막내아들은 출가해 중이 되었다. 해인사에 머물다가 문수산 남쪽 산에 절을 지어 살았는데, 그 절을 김신암(金信庵)이라 하였다. 이 절은 정조 10년(1780)판 읍지를 보면 ‘문수암 남쪽 3리에 있는데, 신라왕의 소창’이라 하여 그 때까지는 절이 실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절로 인해 산 이름을 김신기산(金信基山)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남암산(南巖山)이라 한다. 또 이절에는 김신대(金信台)를 만들어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으며 지금도 절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경순왕이 크게 탄식한 자리를 ‘헐수정’이라 하였으며, 동자승이 자취를 감춘 곳을 무거(無去)라 하여 무거동의 지명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또 이 전설의 주인공을 가리켜 무거 인근의 어른신들은 “짐부대왕”이라 하는데, 이는 “김부대왕(金傅大王)”으로 경순왕의 이름이다.

● 왕생이 들과 한림정 터
옥동에서 신정동에 걸쳐 있는 영취산 봉우리들을 남산 십이봉이라 하는데, 예로부터 이곳에 큰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 왕생(王生)이 들과 한림정(翰林亭)터가 그것이다. 조선시대 중엽에 국풍(國風)이라는 한 풍수지리가가 문수산을 거쳐 남산 십이봉을 타고 울산에 오게 되었다. 국풍은 사방을 두루 살핀 뒤, 무엇인가 찾은 듯한 표정으로 산을 내려왔다.
달동까지 내려온 국풍은 다시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동의 옛 이름 환지(串旨)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산세가 반도처럼 돌출한 곳이며, 지금의 들은 아직 갈대가 우거진 간사지(干瀉地)에 지나지 않았다.
국풍이 삼백 보 가량 갈대를 헤치고 오더니 미리 준비해 온 쇠말을 박고 난 뒤에 왕생혈(王生穴)이라고 중얼거렸다. 뒤에 이곳에는 토사가 쌓여 들이 형성되었는데, 사람들은 임금이 날 곳이라 하여 왕생이 들이라 하였다.
국풍은 무덤실 근처에 다시 쇠말을 박으며 한림(翰林)이 배출될 한림정혈(翰林亭穴)이라 하였다. 이 국풍을 일러 사람들은 남사고(南師古)라 하는가 하면 성지(性智)라 칭하기도 한다.
왕생이 들에는 일제시대 때 일본들이 경리부(經理部) 건물을 지은 일이 있었다. 이때 일하던 사람들이 쇠말을 찾았다 하여 구설수에 올랐으며, 해방이 되자 강남초등학교를 그 자리에 지었다가 옮겼다.
무덤실 근처에는 울산농업학교를 지어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이를 본 사람들은 과연 한림들이 날 자리였구나 하였다. 또 원당 근체에는 명당을 찾아 무수한 무덤들이 들어앉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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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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