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에 미친 양반, 기록을 남기다 <심원권일기>
즐기 GO/문화예술2012. 8. 30. 14:32

 

 일기(日記)란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으로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잘 관찰하여 거기에서 발견된 주제나 의미에 따라 생각과 느낌을 더해 쓰는 글을 말한다.

 일기는 자신만을 위해 쓰는 글이지만, 먼 훗날에는 당시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기도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일기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일 것이다.『난중일기』는 임진왜란(1952~1958)이 일어난 다음 달부터 장군이 전사한 전월(前月)까지 7년 동안 작성한 개인의 기록이다. 여기 우리 울산지역에서도 무려 64년간이나 일기를 기록한 놀라운 주인공이 있다. 일기의 작성자는 이순신처럼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심원권(沈遠權)"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농민이다.

 심원권(1850~1933)은 젊은 시절 한 때 여느 유생처럼 과거 급제를 꿈꾼 몰락한 양반(혹은 향반)으로, 20세가 되는 1870(고종 7)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사망하는 1933년까지 일기를 썼다. 놀라운 것은 이 기간에 부모님 상을 당한 3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심원권의 일기는 『난중일기』와 달리 이 일기를 작성할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기록은 한 줄도 없다. 1871년 신미양요와 1882년 임오군란, 1894년 청일전쟁과 갑신정변, 1904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10월 1일 한일병합 조약이 발표되던 그날에도 이날 일기에는 이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 대신 온통 날씨와 바람과 구름과 물가와 주변 친지 이야기뿐이다.

 심원권은 열흘마다 한 번씩 시장에 나갔을 때 보고 들은 물가를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일기가 시작되는 1870년대 한 되에 2~4전으로 시작한 쌀값은 1900년대에는 최고 16전까지 급등한다. 1892년 11월30일, 심원권은 모든 재화의 가격이 높아지고 곡물가격이 높아지는 이를 일컬어 흉세(凶歲)라 할 수 있다고 한탄한다. 죽기 전 그의 고백도 평생 쌀값을 관찰했지만 도대체 그 이치를 알 수 없다 하였다.

80여 평생 서울은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대도시라고는 오직 대구에 간 것이 전부일 뿐, 일생을 자기집 반경 4㎞ 내에서만 활동한 사람이 남긴 이 일기가 후세를 위해 작성된 기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 개인이 자신의 관심사를 작성한 일기를 통해 개항 이후 급속한 대외개방과 물가폭등이 우리 역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는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