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산(742m)은 계곡을 빼면 가치가 반감하는 산이다. 대운산과 계곡은 실과 바늘 같은 존재, 아니 그 자체로 암수한몸이다. '애기소 폭포',  '구시소' 등의 배어난 폭포와 맑고 청량한 물줄기가 계곡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더구나 등산로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로 적합한 곳이다. 대운산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은 주차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계곡 속의 작은 연못 '애기소'라할 수 있다. 짙푸른 물을 가득 채운 10여 평의 소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하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기역자 모양의 웅장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소망객의 기도가 이어진다. 대운산 계곡은 형형색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수석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어느 한적한 바위에 걸터 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군 채 물과 바위, 사람이 하나 되는 탁족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적당한 오르내림과 능선의 기복이 있는 이곳 등산로는 단풍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마치 산림욕장에 온 듯한 느낌을 전한다. 터널 같은 호젓한 산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만보' 등산로라는 이름처럼 기분 좋은 '느긋함'을 약속한다. 대운산 계곡이 지닌 색다른 묘미는 예로부터 영남 제일의 명당으로 알려진 내원암에서 찾을 수 있다. 내원암은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마지막 수행 장소로 택한 곳으로,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 하여 '도통곡'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운산 정상에 올라 가지산, 신불산 등 영남 알프스의 고봉들을 옆에 거느린 채 맞이하는 일출 역시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장엄한 일출의 풍경 속에 그 옛날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행길이 엿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설화/전설

● 성인정
   온양읍 발리(鉢里)에 위치한 옥련정(玉蓮井)은 조선시대의 명승인 일선(一禪)스님이 팠다는 우물이다. 일선 스님이 이 우물을 판 후에, 하루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서북쪽을 향하여 뿌리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인근 주민들을 평소 일선 스님의 비범함을 우러러보던 터라 누구 하나 그 까닭을 묻지 않았다.
   바로 그 시간 합천 해인사의 장판각에 큰 화재가 일어나 절간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모든 스님들이 발만 동동 구르며 애만 태웠다. 그런데 울산이 있는 동남쪽에서 갑자기 한 줄기 폭우를 동반한 구름이 몰려와서 순식간에 불을 껐다고 한다.
   일선 스님이 신통력을 부린 결과였던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일선 스님을 성인으로 여기고, 그 우물을 성인정(聖人井)이라고 불렀다. 성인정 옆에는 늘 한 포기 풀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일선 스님이 발리를 떠날때, "이 풀이 죽으면 나의 입적(入寂)을 알리는 것이며, 이 우물을 짜 올린 돌이 빠지면 나의 이가 빠지는 것"이라고 예언했다. 일선의 호는 휴옹(休翁), 성은 장(張), 본관은 울산으로 이곳 발리 출생이라고 전해진다.

● 도통골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의 대운산 밑에는 상대(上大)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서쪽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도통골에 이르게 된다. 이 도통골의 용심지(龍深池)는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행지라 한다.
   그 이전까지 대사(大師)는 장안면 장안사(長安寺)의 말사인 척판암(擲板庵)에 머물고 있었는데, 도통골까지는 불과 10리 미만의 거리였다. 대사는 계곡의 수려함에 이끌려 제자들과 함께 이곳 도통골로 옮겨와 수도에 정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대사가 제자 한사람을 부르더니 채를 주면서 그것으로 물을 떠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채를 받은 제자는 한 동안 머뭇거렸지만, 용심지에 가서 물을 떠 보기로 했다.
   그러나 채에 물이 담길 리 만무했다. 밑으로 빠져나가는 물을 담기란 불가능했다.
대사의 명을 상기하며 제자는 다시 채를 넣어 물을 떠 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채에 물이 담기었다. 놀란 제자는 행여나 물이 빠질까 싶어 조심하며, 물이 든 채를 대사에게 건넸다. 채를 받아든 대사는 북쪽을 향하여 주문을 외우며 물을 뿌렸고,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일아나서 북쪽 하늘로 흘러갔다.
그 때 월성(月城)의 불국사(佛國寺)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대웅전이 불에 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남쪽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날아오더니 한 바탕의 빗줄기를 쏟아내며 불을 껐다고 한다.
그 뒤로 원효대사가 살던 이 골짜기를 도통골이라 부르고 있다.

● 대원사의 빈대
   온양읍 운화리의 상대 마을 절터골에는 대원사(大原寺)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등재되었던 이름난 절이었으나 조선 정조 10년(1786)에 폐사되고, 지금은 그 절터에 4기의 부도만 남아 있다. 이 절의 폐사와 관련해 마을에 구전하는 전설이 있다.
   대원사 주지는 성격이 다소 괴팍해 불심 깊은 신도들의 조용한 참배마저 귀찮게 여길 정도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도사가 절을 찾아와 잠시 쉬게 되었다. 이 때 주지의 입에서 "사람들이 적게 오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이 말을 들은 도사는 "어렵지 않는 일이니 그리 근심치 않아도 될 일이 올시다"라며 "마을로 내려가는 산모퉁이에 큰 길을 내게 되면 소원대로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주지는 그 길로 산모퉁이를 헐어 길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작업중에 석불 한 구가 솟아 나왔다. 이 부처는 그만 삽과 괭이에 찍혀 목이 떨어져 피가 흘러 내렸다.
   이런 일이 있고 부터 갑자기 절에 빈대가 들끓어 끝내 폐사를 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절터의 바위를 뒤져보면 빈대의 껍질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울산에는 부자들이 손님의 왕래를 금하였을 때, 집이 망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는데, 욕심 많은 부자들을 경계한 설화들이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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