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성곽의 도시"라 불릴 만큼 관문성(사적 제48호)을 비롯하여 울주 언양읍성(사적 제153호),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사적 제320호), 개운포성지(시기념물 제6호), 유포석보(시기념물 제17호), 남목마성(시기념물 제18호), 언양 천진리성(시기념물 제19호), 문수산성지(시기념물 제34호), 울산왜성(시문화재자료 제7호), 서생포왜성(시문화재자료 제8호), 운화리성지(시문화재자료 제14호), 비옥산성(시문화재자료 제15호) 등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성곽들이 있다.

▲노출된성벽하부모습(동문지주변,'85발굴)
사진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이렇게 많은 성곽들이 축조된 이유는 울산지역이 동쪽으로 해안선이 발달하여 일찍부터 해안을 통한 교류와 이민족의 침입이 빈번했던 지역으로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대외 교역창구 및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하는 한편, 왜구의 침입로가 되어 국토방위상의 중요한 군사거점이 되어 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중 1987년 사적 320호로 지정된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이하 병영성)은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언제라도 찾아가 볼 수 있는 울산의 대표적 성곽유적으로, 세종 때 10년간을 제외하고 조선시대 말까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도()단위 최고 군사시설이었다.

▲발굴조사전상태(동문지주변)
사진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병영성은 조선 태조6년(1397)에 진이 설치되고, 조선 태종 15년(14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자리에 좌도병마도절제사영이 이전된 후 태종 17년(1417)에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그 후 세종 8년(1426)에는 울산 병영이 경상좌도 병영인 창원 합포의 우도내상성과 일시 합치되면서 지금의 병영성을 잠시 비워두었으나 선조 37년(1604) 다시 이곳으로 병영을 이전, 철종 10년(1859)에 남문외성이 축성되는 등 조선시대 말까지 사용되었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울산왜성을 축조하면서 병영성 성벽의 성돌을 옮겨갔고, 또 해방이후 성터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성터는 경작지로 개간되었으며, 대단위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되면서 성은 훼손되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개발에 밀려 도심지역에 입지한 병영성은 개발을 제한하는 장애요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병영성은 조선시대 지방군 최고의 군사지휘기관이며 군사요충지로 외침을 막고 국토를 지키려고 했던 고달픈 삶을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항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최근 병영성은 북문지 일대를 중심으로 성벽 잔존구간 보존과 추가 훼손 방지, 그리고 성곽을 활용한 탐방 산책로 조성 등 우리 생활공간과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도록 복원, 정비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같은 장소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여기 이 공간 위에 겹겹이 쌓여 현재진행형의 층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우리선조들이 성루화각(城樓畵角)이라 하여 울산의 8영 증 하나로 뽑았던 이 성곽 길에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역사책보다 더 강렬한 역사가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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