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지역 주민을 비롯해 울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왕암공원(울기공원)이다. 만발한 벚꽃이 고개를 숙이면, 해송의 진한 향기가 녹음을 드리우고, 가을바람 은은한 600m 산책로에는 어김없이 겨울바다의 운치가 겹쳐져 사계절 모두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왕암공원은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휴식처다. 우리나라 동남단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뽀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 지점에 해당하는 대왕암 공원은 그래서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등대로도 유명하다. 간절곶 등대와 함께 하룻밤 등대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뭔가 특별함을 찾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공원 입구에서 등대까지 가는 600m의 산책길은 송림이 우거져 있다. 수령 100년 이상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어 시원함과 아늑함을 선사한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벚나무, 목련, 동백, 매화, 개나리 등이 다양한 꽃 잔치를 연출한다. 송림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이다. 마치 선사 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뭉쳐 있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 곧장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하늘로 솟구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공원을 한바퀴 돌고 북쪽 등성이를 넘어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일산해수욕장이다. 1km에 달하는 백사장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맛이 남다르다. 여정이 허락한다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그리고 현대미포조선 등을 꼭 둘러보자. 산업수도 울산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설화/전설

● 동축사
   동축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신라 진흥왕 즉위 14녀(553)에 새로운 대궐을 본궁 남쪽에 지으려할 때, 거기서 황룡이 나타났다. 이를 불사로 고쳐 황룡사라 하고, 진흥왕 30년에 담을 쌓아 17년 만에 완성하였다.
얼마 후 남해에 한 거선이 떠와서 하곡현(河曲縣·지금의 울산) 사포(絲浦·지금의 태화동)에 닿았는데, 검사해 보니 공문이 있었다. '서축(西竺·지금의 인도) 아육왕(阿育王)이 황철 5만7천근과 황금 3만 푼을 모아 석가삼존상을 주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인연이 닿는 곳에서 이루어지게 하려고 모든 자료를 배에 실어서 바다에 띄웠다'는 것이다.
현리가 문서로 자세히 아뢰니 왕이 사자를 시켜 그 고을 성의 동쪽 땅을 골라 동축사를 세우고 삼존을 안치하였다. 금철을 서울로 실어 들여 진흥왕 35년(574)에 장육존상과 두 보살을 완성한 뒤, 그것을 황룡사에 안치하였다.
   그런데 이듬해에 불상에서 눈물이 흘러 발꿈치까지 이르러 땅이 한자 가량 젖었다고 한다. 그것은 대왕이 돌아갈 조짐이었다. 불상이 다 이루어진 뒤 동축사 삼존불도 또한 황룡사에 이안 시켰다고 한다. 즉, 동축사는 진흥왕 30년(569)부터 35년(574) 사이에 삼존을 안치하기 위하여 세운 절로써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 동축사 팥죽
   어느 해 동지(冬至) 때의 일이었다. 동구 서부동의 한 노파가 팥죽을 끓이느라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날도 밝지 않은 첫 새벽에 누군가 찾아왔다. 동축사의 상좌(上佐)였다. "이 칩은(추운) 새벽에 웬일인고? 부직(부엌)에 손이나 좀 녹여라"하고 노파는 상좌를 부엌 앞에 불렀다. "보살님, 우리 절에 그만 불씨가 꺼져 팥죽을 못 끓일 판이 났심더. 그래서…"하며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불씨야 여기 안 있나!"하며 팥죽 한 그릇을 떠주며 추우니 먹고 가라고 하였다.
   팥죽을 맛있게 먹은 상좌는 불씨를 얻어 산으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동축사 스님이 마을에 내려오다 우연히 노파를 만났다. 서로 합장 예배하고 난 뒤, 노파가 "세상에 그 칩은(추운) 동지에 상좌를 보내다니… 불씨를 가져가더니 팥죽은 잘 끼릿든기요?"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노파가 "상좌가 와서 팥죽 한 그릇 묵고 불씨 갖고 갔심더"라고 덧붙였다. 절에 돌아온 스님이 상좌를 불러 사연을 물었지만, 상좌 역시 모른다는 것이었다. 노파가 거짓이나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닐 테고,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법당에서 염불을 하던 스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처님 뒤에서 시립하고 있던 어느 보살의 입에 팥죽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며칠을 두고 부끄러운 나머지 밖에 나오질 못하였다. 절의 불씨가 꺼지자 부처님이 신통력을 부려 불씨를 가져 온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지자 동축사 부처님은 영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어풍대
일산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일산진(日山津) 마을을 지나 동해로 돌출한 작은 반도가 있는데, 이곳을 고늘산이라 하며. 주위에 기암괴석이 즐비한 곳을 어풍대(御風台)라 한다. 아름다운 비경으로 명성이 높은 어풍대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 임금들이 명승지를 찾아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내력이 있는데, 이 곳에 오르면 안개가 걷히고, 겨드랑이 밑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하여 생긴 지명이라는 것이다.
보통 임금이 행차할 때 백관은 물론 궁녀들이 뒤따르게 된다. 일산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어풍대로 건너가거나 바다에서 뱃놀이를 하니 녹의홍상(錄衣紅裳) 고운 옷이 꽃을 피웠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그 곳 나루터를 고늘이라고 하였고, 한자로 뜻을 새겨 쓴 것이 화진(花津)이다.
고늘의 어원을 살펴보면, '꽃'의 옛말 '곶'과 나루의 고어 '늘'에서 꽃과 나루를 묶은 것이 꽃나루이며, 이 꽃나루의 옛말이 '곶늘'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음이 변해 지금의 [고늘]이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임금이나 왕후, 왕세자가 행차할 때 자루가 긴 양산으로 해를 가리는 의장(儀仗)을 받치는데, 이것을 일산(日傘)이라 하였다. 꽃처름 아름다운 궁녀들의 옷에서 화진(花津)이 생겼다면, 임금의 일산으로 연유해 생긴 이름이 바로 일산진(日傘津)이었다. 이 일산진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산(日山)으로 변하게 되었다.

● 낙화암과 홍상도
   방어진 반도(方漁津半島)의 동쪽은 작은 만곡(灣曲)이 발달해 있고, 경관이 수려해 울산의 해금강(海金剛)이라 불린다. 일산(日山), 전하(田下), 미포(尾浦) 등 소만곡(小灣曲)은 돌출한 소반도(小半島)를 이루어 댕바위, 용굴, 고늘개, 어풍대(漁風台), 녹수구미 홍상도(紅裳島), 낙화암(落花巖), 파련암(波連巖) 등의 명소를 남겨 놓았다. 이러한 경승지 가운데서도 낙화암과 녹수(錄袖)구미는 여인의 애절한 죽음에 얽힌 전설을 이 땅에 남겨 놓았다.
하루는 어느 병사(兵使)가 기생들과 함께 미개(尾浦)에 나와 배를 타고는 돌섬으로 건너가 한바탕 술자리를 벌였다. 기생들의 노래 가락에 더욱 술이 취하고, 흥겨운 춤판이 이어졌다. 그 때 녹의홍상(錄衣紅裳)을 입은 기생 몇이 술에 취한 나머지 그만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죽은 기생의 치마가 벗겨져서 파도를 타고 한 돌섬에 얹혀졌고, 초록색 저고리 소매는 어느 구석진 곳까지 밀려 나왔다. 훗날 사람들은 기생들이 떨어져 죽은 바위를 낙화암(落花巖)이라 불렀다. 붉은 치마가 얹힌 바위는 홍상도(紅裳島), 초록빛 소매가 밀려나온 구석진 곳을 녹수구미(錄袖琴)라 하였다. 낙화암과 홍상도는 모두 현대중공업 공장부지에 편입되었고, 전하동의 녹수구미는 끝 자를 거문고 금(琴)자로 쓰다가 지금은 단지 녹수(錄袖)라고만 부른다.

● 백마의 울음
   옛날 남목(南牧) 서부동(西部洞)에 김씨(金氏)부부가 살고 있었다. 학수고대하던 사내아이를 출산하던 날, 마른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나타나 김씨 집으로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보고 좋은 징조라 예언했다.
한 달이 지난 뒤, 밖에서 일을 하다 젖을 먹이기 위해 방으로 들어온 김씨 부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기가 천정의 대들보에 붙어 있던 것이다. 그것은 김시 부부에게 커다란 충격이자 걱정으로 다가왔다. 소문이 퍼져 관아에서 알게 된다면 큰 장수가 되어 역적이 될 것을 두려워해 아기는 물론 자신들마저 해칠 것이라 여겨졌다. '더 키워 정이 든다면 그 노릇을 어찌할까?' 이런 고민 끝에 김씨 부부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들의 손으로 아기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냉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자신들의 죄를 조상에게 고한 뒤, 김씨는 마루에 있던 다듬이 돌을 덜어 아기의 가슴에 얹고 말았다. 차마 죽은 모습을 볼 수 없어 맨발로 뛰쳐나와 통곡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땅속에서 말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곳을 파보니 큰 백마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말은 남목 앞의 안산(安山)으로 날아가 허공을 맴돌더니 긴 울음 소리를 남기고 하늘로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장수를 기다리던 말이 주인을 잃고 혼자 하늘로 올라갔구나!'라며 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그 장수가 입을 갑옷이 당고개의 갑옷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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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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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니수 2018.05.02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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