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청량면 율리에는 영축산이 있죠. 불가에서 제 10번 운지라고 하는 영축산은 문수산의 바로 동쪽에 있습니다. 영축산에 있는 율리에는 보현수라고 불리우는 나무와 지동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요. 이곳에는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1년,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지동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17세 때 머리를 깎고 출가한 인물입니다.

 하루는 그에게 까마귀가 말하기를 영축산을 찾아가 낭지대사의 제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동은 이 말을 듣고 영축산으로 가던 길에 마을 어귀의 나무 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보현대사인데 너에게 계품을 주려고 왔다"며 계를 베푼 후 사라졌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지동은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도중에 한 스님을 만나 까마귀의 일을 말하며 낭지대사의 거처를 물었습니다. 스님은 그가 바로 낭지라고 일러주면서, 법당 앞에 까마귀가 와서 말하기를 "지금 성아가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스님(낭지대사)은 성스러운 까마귀로 인해 서로 만나게 된 것은 산신의 도움이라며, 이곳의 산신은 변재천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감명한 지동은 대사에게 귀의하였습니다. 얼마 뒤, 계를 주려는 대사에게 " 저는 벌써 동구 앞 나무 밑에서 보현보살에게 정계(正戒)를 받았습니다."며 사양했습니다. 대사는 감탄하며 "지금까지 밤낯으로 지성을 만나고자 원했는데 지금 네가 이미 계를 받았으니 내가 너에게 미치지 못함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낭지가 더욱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잘했구나. 너는 보살께서 직접 내리신 만분지계를 이미 받았구나. 나는 태어난 이후 항상 저녁마다 조심하면서 은근히 보현보살 뵙기를 염원했었다. 그랬는데도 정성이 감동을 주지 못했는데, 너는 벌써 계까지 받았다니, 나는 너에게 한참 못 미치는구나."

 그러면서 도리어 지통에게 예를 표하였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그 골짜기 안 나무를 보현수(普賢樹)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동이 되려 물었습니다.

"법사께서는 이곳에 사신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법흥왕 정미년(丁未年, 572)에 처음 이곳에 와 살았는데, 지금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구나."

 지동이 산에 온 때가 문무왕(文武王) 즉위 원년(661)이니, 따져보면 135년이 됩니다. 지동은 뒤에 의상(義湘)이 살던 곳에 가서 당에 오르고 오묘한 이치를 깨닫고 불교의 교화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지동은 바로 <추동기(錐洞記)>의 작자다.

이러한 일들로 대사는 마을의 나무를 보현수라 하였으며, 율리에는 지동골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그림/이성민

글/울산문화관광

 

 

 

 

Posted by 울산누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7.0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2.07.0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울산누리 2012.07.04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울산의 설화나 민담 등을 엮어 놓은 책은 저희가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울산관광가이드 웹페이지 울산12경 소개란에 12경과 연관된 설화, 전설이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guide.ulsan.go.kr/tourinfo/tourinfoList.do?L=101)
      그리고, 포스팅 내용은 퍼가셔도 되시구요. 다만, 출처가 "울산누리 : blog.ulsan.go.kr"이라고 명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