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상북면 등억리에 있는 한 산봉우리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깊은 사연이 얽혀 있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실까요.

 상북면 등억리 마을 동쪽에는 묘하게 생긴 아담한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과부성입니다. 이 성에 얽힌 사연은 7년 동안 우리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던 임진왜란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당파 싸움과 사대주의에 젖어 공직 기강이 무너진 조정 대신들에게 임진왜란은 중과부적의 전쟁이었습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군인들을 보며 백성들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다 못해 일어선 군대가 바로 의병이었죠. 총을 든 왜병들을 당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무기를 만들어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런 전황 속에 울산에서도 많은 외병들이 궐기해 빛나는 정공을 세웠고, 조국과 겨레를 위해 많은 의병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등억리와 인근 마을 왜병들은 이 과부성으로 올라가 왜적과 대치하며 장렬하게 싸웠습니다.

 화건과 횃불을 던지며 투석.투창을 했으나 조총을 든 왜적은 그 거리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성안역 의병들은 하나 둘 차례로 쓰러져 갔고, 결국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죠.

 왜적들이 물러간 후 피신했던 마을 사람들은 과부성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의병들의 시체가 즐비했습니다. 누구의 시신이라는 것을 가리지도 못하고 산 너머로 운구한 뒤 장례를 지냈습니다. 이렇게 묻은 묘의 수가 수백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몰살을 당한 과부성 싸움이 끝나고 나서 이 마을에는 과부가 생겨났고, 이 산을 가리켜 과부성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 속, 그곳은?                                                                                                                        

과부성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부로산(扶老山)의 서쪽이며 등억 마을의 바로 뒷편 산정에 있는 성으로서 시루를 엎은 것 같다하여 속칭 시루성이라고도 부릅니다. 읍지에는 성의 둘레가 2천자이며 성안에 두 곳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고적(古蹟) 조에서는 임진왜란 때 언양지방의 의병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있었음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성의 이름도 이러한데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는데 석축은 모두 무너지고 성내의 지표에는 많은 신라토기편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림/이성민

글/울산문화관광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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