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곳이지만 축선사는 신라 김유신이 세웠던 절로서 삼남면 하잠리에 있었습니다. 이 절에는 김유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각각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일까요?

 신라 혜공왕 14년(778)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김유신의 무덤에 홀연히 바람이 불면서 한 사람이 준마를 타고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마치 김유신 장군의 모습과 같았다고 합니다. 의갑(衣甲)과 기장(器仗)을 차린 장군 40여명도 그 뒤를 따라 죽현릉(竹現陵• 미추왕릉)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잠시 후 땅이 진동하며 마치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평생 나라를 위해 환난을 물리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으며, 지금은 혼백이 되어서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는데, 지난 경술년(혜공왕 6년)에 내 자손이 죄 없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는 군신이 모두 나의 공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는 나라를 굽어 살피지 않겠으니 임금님께서는 허락하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미추왕이 대답했습니다.

"그대가 이 나라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은 예전과 같이 노력하라!"

 세 번이나 청했지만, 다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혼백은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갔습니다.

 능지기로부터 이런 말을 전해들은 혜공왕은 놀라 두려워하며 신하 김경신을 김유신 능에 보내 사과하고, 공을 위하여 공덕보전(功德寶田) 30결()을 축선사에 내려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이 절은 김유신이 평양토정(平壤討定) 뒤에 식복(植福)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었습니다.

 

울산설화 속 그 곳 / 하잠리 축선사                                                                                                    

 하잠리는 삼동면 7개 법정동리의 하나인데, 하잠(荷岑)이란 마을의 생긴 모양이 연잎이 피어있는 것 같다 하여 "연 하()"자와 "봉우리 잠()"자를 따서 하잠(荷岑)이라 부른다고 전해옵니다. 하()의 훈()이 약명 박하()이기도 하므로 "박"으로 약훈차(略訓借)하면 하잠은 "재" 또는 "잠"이 되어 광명한 봉우리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세종과 예종 때의 한터(大吐里) 일대로 비정(比定)되는 곳입니다.

축선사(鷲仙寺)는 하잠리에 있었던 절인데,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뒤에 김유신(金庾信)이 세웠습니다. 축선사는 축성들에 있다가 없어졌으며, 터에서는 여러 가지 유물과 와당(瓦當)이 나왔습니다.

 

 

그림 / 이성민

글 / 울산문화관광(웹진 울산12경)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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