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설화가 서려있는 망해사(望海寺)
즐기 GO/낭만여행2012. 3. 1. 12:50


처용설화가 서려있는 망해사(望海寺)

신라가 나라의 기강을 세운후 반도의 동쪽 끝에 있지만 해상을 통하여 여러나라와 무역을 하였던 것 같다.
바다와 항구, 강, 육지와 접한 지형 등의 지세를 살펴보면 울산인근의 항구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신라시대때의 지명, 설화 등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개운포와 처용설화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고 현재에도 처용암, 개운포, 망해사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처용설화와 망해사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망해사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때 창건된 절이다.
신라 헌강왕이 울산지방에 민심을 파악할 목적으로 왔다가 개운포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구름이 모여들어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왕은 일관(日官)에게 물어니 "동해용왕이 변괴를 일어킨 것이라 하고 좋은 일을 행할 것"을 권하였다.

왕은 근처에 절을 지어 용을 위하라고 하였고 용은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왕을 칭송하였다. 그리고 용의 아들 중 한명이 서라벌(경주)로 가서 왕을 도왔는데 "처용(處容)"이라 하였다.

이때 왕의 명령으로 지은 절이 "망해사"인데 망해사 대웅전 벽에는 처용설화의 내용이 담긴 벽화가있다.

영축산 망해사

헌강왕은 영축산 아래 절을 짓도록 하였는데 처음에는 신방사(新房寺)라 불렸고 지금은 망해사(望海寺)로 부르고 있다. 망해사로 고쳐 부른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데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처용랑 망해사"기록이 나온다. 망해사는 순조31년(1831)의 기록과 철종12년(1861년)김정호의 "대동여 지도"에는 망해사 기록이 있었어나 광무3년(1899)에 간행된 울산읍지에는 폐찰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망해사는 조선말 동학운동(농민운동)으로 절이 폐사 된 것으로 추정되며 1957년 영암스님이 당우를 건설하고 터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이나 불상등은 불을 지르고 훼손을 하였지만 무거운 석조부도는 파손하기가 힘들어 방치 한것을 복원을 하여 보물 제1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망해사에서 바라본 동해안...
망해사 절 마당에서도 동해안을 살펴볼수있다.
지금은 울산공업단지가 있어 동해바다를 바라보는게 힘들지만 시야가 좋은 날이면 동해바다와 외황강, 개운포 등을 바라볼 수 있다.

망해사

지금의 망해사는 대웅전, 삼성각, 범종루, 요사채로 구성된 작은 절집이다. 그러나 보물173호 부도탑을 보아서는 지금보다는 규모가 큰 사찰로 추정된다.

망해사 대웅전 벽에는 불화(佛畵)대신  헌강왕과 처용설화가 그려져 있다.
보통의 경우 대웅전 벽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가 있는데 망해사 대웅전에는 팔상도 대신 처용설화가 있는데..

1)개운포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는 그림

2)동해 용이 나와서 왕을 만나 칭송하는 그림

3)왕의 지시로 영축산 아래 절을 짖는 그림

4)신방사라는 절을 지은후 고승을 위한 부도탑 건립 그림으로 구성된 4장의 벽화가 불화대신 그려져 있다.

1)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구름이 끼여 앞을 볼수 없었다.
   왕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연후를 물어니 동해용왕이 변괴를 일어켜 날이 어두워지고 앞을 볼수 없다고 하니 왕은 동해동왕을 위하여 
   절을 지어라 명하였다.

2) 동해 용왕은 기뻐하여 일곱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왕을 칭송하고 춤을 추었다.

3) 왕의 지시로 영축산 아래 절을 짖고있는 모습..
    처음에는 신방사라고 불렸어나 나중에는 망해사로 절이름이 바뀌었다.

4) 절을 지은후 훌륭한 고승의 부도탑을 건립하는 모습
    망해사지 석조부도(望海寺址 石造浮屠)는 보물1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망해사는 규모가 작은 절이지만 대웅전 처마 밑에 용조각이 아주 훌륭한 것 같다.


돌부처의 겨울나기...
목도리에 양말까지 재미있는 풍경입니다.
망해사에는 돌부처도 여유와 낭만이 있습니다.


망해사 뒷편에 있는 "망해사지 석조부도(望海寺址 石造浮屠)" 보물173호 지정되어있다.

 

망해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