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방극장에 사극열풍이 식지 않고 있는데요.
정통사극은 물론, 퓨전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극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인들이 본 적없는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있고,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볼 수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렇듯, 옛 과거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현대인들의 마음을 자극하죠.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개관 2주년 기념특별전 '비사벌 송현이의 기억 - 창녕 송현동 고분 문화' 에서 또한 옛 생활상과 문화를 볼 수 있는데요. 전시 내용은 순장녀 송현이, 비사벌의 지배자, 마구(馬具), 주인보다 더 화려한 장식을 한 말, 비사벌 사람들, 토기 등으로 구성됐으며, 복원 순장년 송현이 등 총 106점의 다양한 유물 및 볼거리가 있습니다.

울산누리와 함께 송현이를 만나러 과거로 떠나 볼까요?



'비사벌 송현이의 기억'이 전시되고있는 울산대곡박물관!
개관 2주년 기념특별전으로 2011년 12월 9일부터 2012년 1월 29일까지 전시된다고 합니다.


현재 '비사벌 송현이의 기억 - 창녕 송현동 고분 문화' 는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는데요.

 송현이가 살았던 6세기대는 여러 나라로 분리 발전되어 오던 가야제국이 신라 세력으로 재편되는 시기였습니다. 또한 창녕의 비사벌을 비롯한 자치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던 유력 지방도 직접통치에 들어가게 되죠. 그러한 증거들은 권력을 상징하는 허리띠와 장신구, 큰칼, 장식마구 등이 경주의 신라왕이 하사한 유물로 채워지며, 토기, 철기 등 생활도구도 경주와 같은 모양이 만들어 지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유물들에서 6세기대 영남지역이 신라에 흡수되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답니다.


송현동 15호분에서 발견된 유물입니다.
송현이가 순장되었던 송현동 15호분은 앞트기식돌방무덤이라고 불리는 무덤인데요. 무덤입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추가장이 가능한 가족공동무덤입니다. 추가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4구의 순장인골이 확인되었는데요.
 
 순장인골의 주변으로 토기와 각종 장신구류가 출토되었습니다.


뼈항아리 모양 토기, 말그림 긴목 항아리, 금다리 손잡이바리입니다.


 창녕지역은 신라가 낙동강 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일찍부터 신라의 주목을 받아왔는데요.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위세품(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들은 신라에서 제작하여 분배된 것으로 비사벌의 지배층을 회유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허리띠 장식은 권력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 허리띠 장신구는 창녕 교동 출토품으로 길게 드리개가 달린 것이 특징입니다. 신라 중심부의 왕급 무덤에서는 이것보다 드리개가 많이 달리고 화려한 순금제 허리띠가 출토되며, 귀족이나 중요한 지방 수장 무덤에서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출토됩니다.

 은제 허리띠는, 경주의 신라왕이 통치 목적으로 지방 수장에게 하사한 상징적인 것으로 볼 수있습니다.


세잎고리자루 큰칼입니다.

 화려한 장식이 있는 큰칼은 귀걸이나 목걸이, 관 등 다른 장신구와는 달리 남성권력자만이 소유할 수있는 전유물이었습니다. 왕비라고 할지라도 칼을 허리에 차고 묻히는 경우는 없죠. 반드시 남성만이 가지며 왼쪽 허리춤에 패용하는 등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주의 왕과 귀족 가운데 남성만이 큰칼을 가질 수 있었으나 점차 비사벌(창녕)과 같은 지방의 중요 수장에게도 서라벌(경주)에서 만든 큰칼이 하사되었습니다. 여기엔 지방수장의 충성심, 지방과의 결속, 회유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화살촉입니다. 그 옛날엔 날카로움과 세심함이 돋보이는 화살촉이였겠죠?


말의 장신구를 뜻하는 마구(馬具)들입니다.

 고대의 말은 운송의 수단과 동시에 전쟁터에 나가는 주인을 도와 전쟁을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죠. 말과 주인은 동일시 되어, 권력이 높을수록 말의 장식도 화려하게 치장하여 지배층으로서 권위를 보여주었습니다.


말의 안장입니다.


작은 굽다리 긴목항아리입니다.

 무덤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부장품들에서 비사벌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있는데요. 송현동 고분군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일정한 위치에서 무리지어 있었습니다. 마치 관을 중심으로 제사상을 차린 모습 같은데요.

 또 무리를 이룬 작은 토기들은 5~6점씩 나무로 제작된 소쿠리에 담긴채 출토되었습니다.


송현이가 살았던 삼국시대는 도질토기라고 불리는 아주 단단한 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가 그릇으로 사용되는 시기였는데요.

 이 그릇으로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요?
송현동 15호분의 순장인골을 생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그들의 음식은 수수, 기장, 조보다는 쌀, 보리, 콩 등을 주로 섭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같이 묻히는 걸 뜻하는 순장.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발견된 송현이는 16세 정도 나이로 치레걸이와 무릎뼈가 많이 닳아 있는 등 여러 상황으로 보아 시종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들의 죽음이 스스로의 선택인지 타인의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각종 위세품과 유물 그리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토기들...
대곡박물관 '비사벌 송현이의 기억 - 창녕 송현동 고분 문화' 를 보며, 송현이의 기억속으로 떠나보는건 어떠세요?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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