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울주군과 경남 양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신불산은 해발 1,209m로 영남 알프스의 7개산 가운데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영남 알프스는 풍광도 수려하지만 억새로 더 유명한 곳인데, 특히 신불산에서 취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4km에 수채화처럼 펼쳐진 수백만 평의 억새 평원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끝없이 계속되는 능선, 그리고 잔 관목마저도 드물게 나타나는 억새들의 천국 신불산!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파르르 몸살을 앓듯 밑동부터 흰 머리까지 서로의 몸을 붙잡고 흔들리는 신불산의 억새평원을 보고 있노라면, 말로는 형언하지 못할 대자연의 풍경 앞에 온 몸이 날아갈 것 같은 행복이 밀려온다.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인 신불산! 향기로운 억새 능선이 가을 산행의 백미라면, 신불산 계곡에 우거진 활엽수는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또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 휴양림에는 노각나무, 들메나무, 서어나무, 박달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뤄 사계절 모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휴양림 내에 위치한 파래소 폭포는 배내골 깊은 계곡과 하얀 물보라가 어우러진 절경으로 울산 12경의 하나이다. 산허리를 길게 돌아가면 33m의 거대한 물줄기 사이로 오색 비단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는 홍류폭포의 비경도 빼놓을 수 없다. 눈으로 듣고, 소리로 보는 이색 즐거움이 교차한다. 볼 것이 너무 많아 힘든 산행이었다면, 하산길에는 신불산 입구의 등억온천 단지에 들러 지하 600m의 천연 암반수로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신경통, 소화기질환, 피부미용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수질이 뛰어난 온천이다.

 



설화/전설

▶ 과부성

   상북면 등억리 마을 동쪽에는 묘하게 생긴 아담한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것이 과부성(寡婦成)이다. 이 성에 얽힌 사연은 7년 동안 우리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던 임진왜란과 관계되어 있다. 당파 싸움과 사대주의에 젖어 공직 기강이 무너진 조정 대신들에게 임진왜란은 중과부적의 전쟁이었다.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군인들을 보며 백성들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못해 일어선 군대가 바로 의병(義兵)이다. 총을 든 왜병들을 당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무기를 만들어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런 전황속에 울산에서도 많은 의병들이 궐기해 빛나는 전공을 세웠고, 조국과 겨레를 위해 많은 의병들이 숨졌다. 당시 등억리와 인근 마을 의병들은 이 과부성으로 올라가 왜적과 대치하며 장렬하게 싸웠다. 화건과 햇불을 던지며 투석·투창을 했으나 조총을 든 왜적은 그 거리가 미치지 못하였다. 성 안의 의병들은 하나 둘 차례로 쓰러져 갔고, 결국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다. 왜적들이 물러간 후 피신했던 마을 사람들은 과부성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의병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누구의 시신이라는 것을 가리지도 못하고 산 너머로 운구한 뒤 장례를 지냈다. 이렇게 묻은 묘의 수가 수백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몰살을 당한 과부성 싸움이 끝나고 나서 이 마을에는 몰 과부가 생겨났고, 이 산을 가리켜 과부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거리 동뫼
상북면에는 몇 개의 아담한 마을이 있다. 하동(下洞)이 있는가 하면 간창(澗倉), 대문각단, 지곡(芝谷), 밤갓 등 마을 이름이 무척 특이하다. 하동마을 앞에는 ‘동뫼’라는 조그마한 들산이 있다. 이 산을 일러 밀양에서 온 산이라고 전해온다. 바다를 앞에 둔 울산은 왜구의 침범이 잦아 성(城)이 필요했다. 한 번은 울산에서 큰 성역(城役)이 일어났다. 울산을 비롯해 인근의 다른 고을 장정들도 징용될 정도로 거대한 역사(役事)였다. 항간에서는 농사를 놓칠세라 조바심을 떨더니, 급기야 밀양에서 원성이 들려왔다. 과중한 부역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다 못해 밀양의 마고할미가 나섰다. 두 손에 회초리를 쥐고 밀양의 흙더미를 휘몰아쳐 석남제(石南嶺)를 넘어 거리(巨里)의 하동(下洞) 앞까지 날려 보낸 것이다. 마고할미가 숨을 고르며 잠시 쉬는 사이, 성역을 끝내고 장정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마고할미는 그만 흙더미를 버리고 밀양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 흙더미가 작은 산이 되어 동뫼(洞山)라 부르게 되었다. 마고할미의 일이 있은 어느뒷날, 길천리 이불(知火)의 정씨 집안에 상사가 일어나서 동뫼에 묘를 들이려는데, 마을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았다. 정씨 사람들은 이 동뫼야말로 밀양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며 산세(山稅)를 내고 매장허가증을 가져왔는데 밀양부사의 허가증이었다는 것이다.

▶ 길천리 소목골
신라시대 때 상북면 길천리 후리마을에 마치 꽃송이 같은 절세미인의 청상과부가 살았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음흉한 사내가 늘 이 과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어느 날 과부가 뒷산 기슭의 밭에 나가 혼자 김을 매고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사내가 겁탈하려 하자, 과부가 말하기를 “내 이미 역부족이니 어찌 당신의 뜻을 거역하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부탁만 들어 주신다면 내 쾌히 몸을 허락하리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다그쳤다. “이 너머 골짜기에 가서 소 울음을 세 번만 하시면 허락하리다.”라고 하자 사내는 그쯤이야 어렵지 않다며 골짜기로 넘어가 “음매, 음매, 음매” 하고 세 번을 울고 나서 과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과부는 이미 자결한 뒤였다. 이 절세미인의 과부는 슬픈 죽음을 통해 불의의 사나이들에게 큰 깨우침을 남겼다. 그 후 사람들이 과부의 절개를 높이 기리고 교훈을 삼기 위하여 이 골짜기를 소움골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소목골로 그 어휘가 변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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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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