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울산의 역사 유적지 망부석과 은을암 망해사
누리 GO/블로그기자2021. 3. 25. 09:10

 

 

울산에는 고대의 역사 유적인 지석묘도 많고 익숙한 재미있는 이야기인 신라시대의 이야기들이 유적지 현장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일대에 있는 신라 충신 박제상(363~419) 유적지 가운데 망부석(望夫石) 설화가 있는 치술령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에 관한 애절한 전설이 있는 곳인데 산 국수봉 정상석 자리 일대에 망부석이 있는데 절개 굳은 아내가 집을 떠난 남편 박제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고개 산마루에서 기다리다 죽어서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이 있습니다.

 

 

 

박제상은 신라의 충신으로 눌지왕의 명을 받아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왕의 동생 복호를 지략과 계교로 데려오나 다시 왜로 건너가 볼모로 잡혀 있던 왕의 또 다른 동생 미사흔을 고국으로 탈출시켰다. 하지만 자신은 왜나라 군사에게 잡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왕은 대아찬 벼슬을 내려 그 충절에 보답했다고 합니다. 부인은 박제상을 기다리다 결국 망부석으로 변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알려진 스토리입니다.

 

 

 

이 이야기의 흔적이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국수봉 아래에 있는 은을암에도 그대로 남아 전합니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왜국으로 떠난 뒤 부인 김씨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치술령에 올라가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남편의 죽음 소식을 전하여 듣고 두 딸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는데 시신은 망부석으로 변하였고 혼은 혼조(魂鳥)가 되어 날아올라 은을암 절이 있는 바위틈에 숨었다 하여 그 바위를 은을암(隱乙巖)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새가 날아오른 자리를 비조(飛鳥)라 하였는데 두동면 만화리에 있는 비조마을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은을암에는 그 역사적 기록을 담은 벽화가 있습니다.

 

 

 

역사 이야기의 현장은 울산 망부석 뿐만 아니라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랑 망해사조에 이야기를 담은 망해사도 그 곳입니다.

 

헌강왕 때 창건했다는 망해사는 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산)에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휩싸이니 일관이 아뢰기를 동해의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행하면 곧 풀릴 것이라고 하므로 왕은 곧바로 용을 위해서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명했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동해 용이 7명의 아들과 함께 나타나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아들 1명을 보내 임금의 정사를 보좌하도록 했다는 창건설화가 전하는 현장입니다. 울주 망해사지 승탑(보물 제173호)이 남아 있는 망해사도 역사의 현장에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으로 이야기들이 전하는 울산의 문화유적지에서 하루정도 지역의 역사 공부를 하는 것도 울산의 유적을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봄의 소식이 이제 곳곳에 들리고 꽃이 피는 봄에는 좀 더 다양한 울산 소식들이 전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