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울산 대곡박물관, ‘울산의 댐과 사람들’ 전시회
누리 GO/블로그기자2020. 12. 16. 18:51

울산 대곡박물관에서는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울산의 댐과 사람들'로서 대곡댐 이주 20년을 맞아 잊혀가는 댐 편입부지 마을들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고 울산의 5개 댐 건설과 수몰 이주민의 이주사를 조명하는 특별기획전으로 고향을 잃은 주민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전시기간은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3월 28일까지 이며, 전시기간 박물관을 찾는 수몰 이주민에게는 한국수자원공사 울산권 지사가 제공하는 소정의 기념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 도시에 댐이 건설되면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주민들은 새로운 이주지에서 새롭게 출발하여야 하는데,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과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이웃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큰 아픔이었습니다.

 

 

지난 1962년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울산에는 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선암댐, 사연댐, 대암댐 이렇게 3개의 댐이 건설됐으며, 이후 늘어난 시민들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회야댐과 대곡댐이 건설됐습니다.

 

 

제1부 ‘울산의 경제개발과 댐 건설’  지난 1962년 3월 설치돼 울산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울산특별건설국의 활동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울산의 첫 댐, 선암댐  울산 남구 선암동에 위치한 선암댐은 울산의 댐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졌습니다. 규모가 작아 대암댐에서 오는 물을 공업단지로 흘려보내는 조절지 역할만을 하다가 지금은 호수공원이 조성되어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공업 입국의 중심, 울산특별건설국  1962년 3월 7일 정부는 국토건설청(이후의 건설부) 직속기관으로 울산특별 건설국을 설치했습니다.  선암댐과 사연댐, 대암댐 축조공사가 이들의 역할이었으며, 1960년대에 지어진 울산의 세 댐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공업의 원천, 사연댐과 대암댐.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던 당시에는 댐 건설에 앞서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댐이 완공된 지 6년이 지난 1974년 12월 울주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됩니다.


1971년 12월 25일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은 극심한 가뭄으로 사연댐의 물이 줄어든 기회를 이용해 이 암각화를 발견하였습니다. 선사시대의 생업활동과 정신세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유적은 그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생활용수의 공급원 회야댐과 대곡댐.  1980년대가 되자 울산은 부족한 생활용수 문제로 몸살을 앓기 시작합니다.
시 승격 당시인 1962년에는 울산 인구가 21만여 명에 불과했으나 20년 후인 1982년에는 60만 명 가까이 3배로 늘어나자 식수 전용 댐인 회야댐이 1982년 12월 착공합니다.

 

 

1991년 일어난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으로 깨끗한 식수원 확보의 중요성을 더욱 환기해 사연댐의 높이를 높이기로 하였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과 국보 제285호인 울주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등 문화유적이 수몰되는 문제로, 사연댐을 생활용수의 공급원으로 바꾸고 사연댐의 상류에 새로 대곡댐을 짓기로 합니다.

 

울산에서 쓰는 물은 어떻게 공급될까?  울산광역시에서는 회야댐만을 직접 관리하며 나머지 네 곳은 한국수자원공사 울산권 지사에서 관리합니다.

 

 

제2부 ‘이주의 기억’


땅에는 그 위를 거닐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는다.
숨결은 지층이 되어 쌓이고, 발자취는 역사가 되어 머무른다.


이곳 전시공간에서는 수몰된 마을들의 역사와 이주민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고향을 영영 잃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선암댐과 사연댐


선암댐 부지에는 '큰 마을'이라 불리던 대리마을과 '새터마을'이라 불리던 신기마을.
'꽃바우(끝 바우) 마을'이라 불리던 화암의 세 개 마을이 있었습니다.
'선암동'이라는 지명은 신선산 정상에 신선이 노닐던 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은 것이랍니다.
세 마을에는 모두 70여 호가 있었으며 청송 심 씨와 울산 박 씨 등이 모여 살았었습니다.

사연댐 부지에는 가장 큰 마을이었던 대곡리 한실마을에 90여 가구가 살았으나, 댐이 지어지자 길이 끊겨 배를 타고 언양장에 가야 할 정도고 막다른 곳이 되어버립니다.  옹태 마을과 세연동 마을도 물에 잠겼습니다.

 

 

이진동 섶다리 (반구교)
이진동 섶다리라 불리던 제1호 반구교에 관련된 일화가 있습니다.
1966년 반구마을 당시 이장이었던 이진동 씨가 대통령 비서실장 이후락이 언양으로 오는 기회를 잡아 차 앞을 가로막습니다.   사연댐이 생겨 통행길이 없어졌으니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주장하자 마을에는 섶다리가 놓였고, 이진동은 그해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다리를 놓아준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당시 박 대통령이 보내 답신입니다.

 

 

포은집  포은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입니다.
그는 귀양지에서 반구대를 찾아와 시름을 달래려 거닐었는데 정몽주와 관련된 일화가 사연댐 부지의 여러 마을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언양에서 중구일에 감회가 있어 유종원의 운을 따서 짓다>
나그네 마음 오늘 더욱더 쓸쓸한데
장기 어린 바닷가에서 물에 나아가고 산에 오르네...

 

 

대암댐과 회야댐


대암댐 부지에는 하잠마을과 둔기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겼습니다.
예부터 도자기를 굽던 곳으로 유명했으며 인근에 신라 김유신 장군의 명복을 빌던 사찰인 축선사가 있었으며,
롯데그룹 창업주 고 신격호의 생가도 원둔기 마을에 있었습니다.

회야댐 부지에는 통천마을과 신전, 신리, 중리마을이 있었습니다.
통천마을에는 고려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 차원부와 조선 세조 때의 공신 차운혁을 모시는 자암 서원이 있습니다.

신전마을과 신리마을 사이에는 신리마을 출신의 재일교포 고 양철석이 놓아준 '철석교가 있었습니다.
1974년 사재를 들여 회야강을 건너는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물에 잠겼지만 그를 기리는 공덕비는 물가로 옮겨져 있습니다.

 

 

회야댐 계통 상수도 확장사업 사진첩.  1981년 댐 건설 부지를 조사한 사진첩입니다. 물에 잠기기 전의 마을 모습과 철석교의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대곡댐
2005년 준공된 대곡댐 부지에는 양수정, 상삼정, 하삼정, 방리 등입니다. 구석골 마을은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건설공사 자재 야적장으로 사용되어 함께 이주해야 했습니다.

특히 가장 최근에 지어진 대곡댐은 부지 내에서 수많은 유물이 출토돼 울산 대곡박물관이 건립되는 계기를 제공한 댐입니다. 삼정리 하삼정 고분군에서는 1,000기나 되는 2~7세기 무덤들이 발굴되었으며, 방리에 있던 백련정은 순조 때 도와 최남복이 지은 정자로 문인들의 모임 장소였으나, 대곡댐 건설로 2000년 두동면 봉계리의 한의원으로 이건 되었습니다.

 

 

백련정 이건 문중회의 문서
백련정 이건에 관한 경주 최 씨 정무공파문회의 회의자료입니다. 대곡댐의 건설로 백련정이 물에 감길 위기에 처하자, 이를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 문서입니다.

 

 

골매기신과 당산나무  동재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인 '골매기신'을 모셨는데, 골매기신은 마을을 뜻하는 '골'과 액운을 막는다는 뜻의 '맥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아름드리나무를 당산나무로 삼아 제당을 지어 신을 모시기도 했는데요. 기이하게도 주민들이 이주할 때를 맞추어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주민들이 고향에 대해 지닌 소속감과 애정을 보여줍니다.

 

 

우리 마을 옛이야기  임의의 한 판넬을 들고 돌려보면 그 이야기에 관한 내용이 나와 마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실향을 이야기하다.  수몰된 실향민들의 고향 이야기가 동영상으로 전하여집니다.

 

 

제3부 ‘망향(望鄕)의 정(情)’


고향이 물에 잠기게 되자 이주민들은 경제적 피해보다, 더욱 아쉬워한 것은 평생에 걸쳐 인연을 쌓아온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주민들이 예전의 유대관계를 회복하고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몸은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  선암호수공원에는 꽃바우 마을 출신 사람들의 애향비가 대암댐 기슭에는 둔기마을 애향비가, 회야댐과 대곡댐 가에도 각각 망향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연댐 이주민을 위한 망향비는 아직 없으나, 반구서원 인근에 대곡곡민학교 수몰 유지비가 있어 졸업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대곡댐 편입부지 마을 사진첩 삼정리 출신의 고 김병훈 씨가 수몰되기 전 대곡댐 부지의 여러 마을 들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울산에 세워진 5개의 댐으로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의 삶 1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후손은 마을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이야기는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