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석계서원과 학성이씨 근재공고택에서 만난 무궁화 그리고 독립 운동 이야기
누리 GO/블로그기자2020. 8. 24. 00:41

학명 Hibiscus syriacus. 한자어로는 목근(木槿) 또는 목근화(木槿花)로 불리는 꽃. 예, 바로 우리나라 꽃 무궁화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무궁화가 대한민국 국화(國花)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적. 풍토적으로 우리나라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 나라꽃으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특징이 있길래 우리나라 꽃 대접을 받을까요?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은 불러봤을 '무궁화 행진곡'(윤석중 작사/ 손대업 작곡)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무궁화(無窮花 - 다함이 없는 꽃)'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피고 지고 또 피는 꽃이 무궁화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한여름 내내 피고 지고를 반복하여 100일 이상 개화하는 꽃이 무궁화입니다. 길게 뻗은 가지에 꽃들이 무성이 달리는데 핀 꽃의 수명은 단 하루입니다. 이른 새벽에 핀 꽃은 저녁이 되면 잎을 돌돌 말아 땅에 떨어집니다.

 

이렇게 여름 내내 가지마다 매일 꽃을 피워 내기를 무려 100일 간 지속하다니.... 참으로 다함이 없는 꽃입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생명력이 강해 척박한 환경에도 쉽게 적응하며 번식하는 꽃입니다. 정말 한민족의 강인함을 절로 연상시키는 꽃인 거지요. 

 

 

2017년 문을 연 태화강 무궁화 정원(태화강 국가정원 내에 위치)

이런 무궁화지만 여름철 만개한 무궁화 군락지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무궁화는 가지가 쉽게 꺾이지 않는 섬유질이어서 학교나 관공서 울타리로 많이 심었는데요. 특별한 관리 없이도 웬만큼 죽지 않다 보니 대부분 촘촘하게 꽃도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로 울타리 노릇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여기에 어지간한 병충해에도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 탓에 관리까지 소흘 해져서 제대로 꽃 피운 무궁화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태화강 무궁화 정원

대공원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장미 정원이,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붉은 양귀비와 국화가 봄부터 가을까지 출렁이는 울산에서 여름철 만개한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나마 늦었지만 다행스럽게도 2017년 태화강 국가정원 한 편에 무궁화 정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삼호교 하부 '무궁화동산'

사실 태화강변에는 무궁화 정원보다 조금 일찍부터 무궁화를 만날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호교 하단부에 위치한 '무궁화동산'입니다. 2012년 산림청 무궁화 조성 사업에 공모되어 문을 연 이곳은 아쉽게도 시민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세월만 흐르다가 태화강 지방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다시 말끔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는 장소입니다. 

 

 

태화강 철새공원 무궁화 가로수길

남구 쪽 태화강 철새공원 무궁화 가로수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은행나무 정원에서 맥문동 군락지를 잇는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이곳은 맥문동이 피기 전부터 맥문동이 지고 난 이후에도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덕분에 여름철 이 길을 걷는 내내 유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무궁화의 장점 덕분에 벚나무를 따라 그늘에 심었는데요. 여름철 태화강변에서 그늘 따라 꽃 보며 걷기에 최고의 장소입니다.

 

이렇듯 태화강변을 따라 울산 도심 곳곳에서 이제는 여름철 만개한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쉽게 만날 수가 있게 되었는데요. 아쉽게도 만나는 대부분의 무궁화가 수령이 10년 남짓한 다소 젊은(?) 무궁화입니다. 도심 속 30-40년 된 벚나무가 흔한 편임을 생각하면 굴곡진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 세월을 견디며 묵묵히 자라온 우리나라 꽃이 없다는 것에 약간은 속상하다지요. 비록 도심이 아니라 외곽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무려 수령이 100년 된 무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울산에 있습니다.  바로 석계서원입니다.

 

 

석계서원
석계서원 -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이다

울주군 웅촌면에 위치한 석계서원은 울산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이예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입니다. 학성 이씨의 시조이기도 충숙공 이예(李藝, 1373-1445) 선생은 이 땅의 외교사에 있어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고려 시대 외교 담판으로 거란을 물리쳤던 '서희' 선생에 이어 두 번째로 외교부가 선정한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국립외교원에 있는 충숙공 이예 선생 동상(사진 출처 - 울산광역시 DB)

이예 선생은 중인 계급인 아전에서 출발하여 종2품(현재 '차관보'에 해당)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까지 오른 조선시대 대표적인 외교관입니다. 최초로 조선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세종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으며 외교관으로 일한 43년간 40회 동안 일본을 왕래했습니다. 조선 시대 대일 외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이런 업적 덕분에 2015년에는 국립외교원에 이예 선생 동상을 세웠으니 한반도 외교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인 것입니다.  

 

 

석계서원 무궁화
100년의 수령을 지닌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을 상대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외교관을 기리는 서원에, 일제 시대 무궁화 제거령 속에서도 살아남은 무궁화는 100년을 이어 지금도 매해 여름이면 피고 지고를 반복하니, 역사의 우연 치고는 참으로 절묘, 아니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궁화 필 무렵 석계서원
여름날 석계 서원 풍경

몇십 년 피고 지고 한 어느 여름날, 다시 무궁화가 꽃을 피웠을 때 이곳에도 광복의 소식이 전해 졌겠지요. 일제의 눈을 피해 그렇게 세월을 견디며 무궁화를 키워낸 이에게 그해 8월 15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연 중 언제든지 석계서원을 방문해도 좋지만 딱 한번 방문할 이라면 개인적으로 무궁화 필 무렵 석계서원을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석계서원을 찾았다면 학성이씨 근재공고택도 함께 방문하면 좋다
학성이씨 근재공고택

 

무궁화 꽃 필 무렵 석계서원을 찾았다면 학성이씨 근재공고택까지 찾으면 좋겠습니다. 이예의 11 세손 근재공 이의창(1725-1781)이 짓고 고종 때 고쳐지었다가 1934년 전체적으로 고쳐 지은 이곳은 조선 시대 상유층 종가의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고택으로 1997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창삼일운동의거비

 한여름 석계서원과 함께 이곳은 찾은 이유는 울산에서 몇 안 남은 고택이기도 하지만 이예 선생의 17 세손 이재락(1886-1960) 때문입니다. 심산 김창숙(1879-1962 독립운동가. 교육가. 성균관대학교 초대학장)과 경주 최부자집으로 유명한 최준 선생과 사돈지간이기도 한 이재락은 울산의 대표적인 항일 운동인 남창 3.1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독립 후에는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근재공고택 사랑채
곳간채
안채

이재락 선생이 울산 지역 독립운동과 함께 울산 유림이 주도했던 독립자금 모금 활동의 주된 장소가  이곳 사랑채 - 심산이 독립운동 자금 모금 일로 울산을 찾았을 때 이곳 사랑채에서 머무르기도 했다 - 였습니다.  이재락 선생의 며느리이자 심산의 딸인 덕기가 이재락 선생이 일본 순사의 의해 체포되는 장면을 보고 쓰러져 회복한 이후로는 안채가 아니 창고인 곳간채에서 생활을 이어 갔다고 합니다.  이렇듯 근재공고택에는 이재락 선생의 펼친 독립운동의 흔적이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석계서원에서 100년을 건너온 무궁화를 바라보다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서원 마루에 올라 잠시 쉬었을 때,  가족 앞에서 일본 순사에 의해 생사 기약 없이 끌려간 이재락 선생과 이를 지켜본 며느리 덕기를 생각하다 고택 사랑채 기둥에 잠시 기대었을 때, 살짝 현기증이 났습니다. 맘이 흔들려서가 아니라 찌는 듯한 무더위 탓에 조금 어지러웠나 봅니다. 무궁화 피고 지는 8월이 오면 이곳으로 발걸음 해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