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천 년의 시간을 품은 망해사지승탑
누리 GO/블로그기자2020. 5. 28. 09:18

'바다를 본다'는 망해사를 향하며 바다와 인접한 절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망해사, 오르는 길은 많이 가파르지 않아 ' 바다를 볼 수 있을까 '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이름만 그럴 것이다. 생각했는데 도착하고 보니 더 높이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해사 입구의 꽃과 함께 걸린 등

 

망해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절이라 합니다. 신라 헌강왕이 해변으로 나들이를 갔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이유를 물었더니, 용왕이 부린 조화이니 용왕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어진 절, 용왕을 위한 절이 바로 망해사라 합니다. 절(망해사)을 받게 된 용왕은 기뻐하여 답례로 아들 처용을 보내 왕을 보좌하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망해사는 조선시대에 폐사가 되었다가 1957년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틀을 잡았다 합니다. 망해사로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이 보이는데요. 그만큼 규모는 소박합니다. 대웅전 오른편에 삼성각이 있고 삼성각을 지나쳐 종각이 있습니다. 갖가지 꽃과 나무가 무성해서 인지 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대웅전 뒤에는 정원이 1단, 2단으로 꾸며져 있고 지장보살, 석가여래상과 돌로 만든 쉼터, 작은 연못도 있습니다. 높은 단은 아니지만 단계로 구분해 만들어 놓은 정원은 손길이 부지런히 닿은 듯 계절별로 피고 질 꽃들이 여러 종류가 보입니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계절이 주는 선물인 꽃이 피고 지니 언제 방문하여도 화사한 정원을 볼 수 있겠지요.

 

 

그 위로 보물제 173호 망해사지승탑이 있습니다. 넓고 볕이 잘 드는 편평한 땅 위에 승탑 2기와 부도 하나가 솟구치듯 서 있습니다. 승탑은 신라 헌강왕 재위 기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쪽 승탑은 완전한 상태이고 동쪽 승탑은 일부가 파손되었습니다. 동쪽 승탑은 넘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전해지며 승탑을 한 바퀴 돌며 찬찬이 살펴보면 파손된 부분이 보인답니다.

 

 

천년도 넘은 세월을 이 곳에 서 있었던 승탑은 천년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일의 소소한 일들부터 역사의 굵직한 사건 사고 모두를 지켜봐 왔으니, 그 자체가 지닌 아우라는 몇 마디 말로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천년의 시간이 무뎌지게 만든 승탑의 선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벅차오르듯 감정이 끓어오릅니다. 천년의 시간을 품고 보물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흔하디 흔한 산의 돌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는 승탑. 좀 더 의연하고 담담하게 살아보자 다짐도 해봅니다. 천년의 시간에 비하면 사람이 가진 시간이란 것이 얼마나 깨알 같은 것일지, 그러니 매일 감사하며 담담하게 살아보고 싶다 생각도 해봅니다.

 

 

승탑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고 절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승탑 혹은 부도라고도 부르는데 모신 스님의 이름이 밝혀진 경우에는 이름 뒤에 ' 탑'을 붙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승탑으로 부른다. 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시면 탑, 스님의 사리를 모시면 부도라 부른다는 설도 있습니다.

 

망해사의 승탑은 누구의 사리를 모셨는지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두 승탑은 규모나 양식이 같습니다. 팔각원당의 신라시대 조각수법이 드러난 승탑으로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연꽃잎 장식이 화사한데요, 꽃잎 조각은 16 잎입니다. 탑신을 보면 각 면에는 창의 형태가 보이고 4면에는 문짝 모양이 있습니다. 수평으로 넓은 지붕돌, 처마와 추녀가 있고 귀퉁이에는 풍경을 달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구멍들도 있습니다.

 

망해사지 승탑이 승탑이 아닌 불탑이라는 주장이 이 부분(승탑에 모신 스님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점, 풍경을 달았던 흔적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데요, 천년의 세월만큼 밝혀지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합니다.

 

 

울산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8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4가지가 승탑, 석탑, 사리탑입니다. 박물관에 있는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을 제외하면 3가지가 울주군에 있습니다. 다음에는 석남사 승탑, 청송사지 삼층석탑을 찾아볼까 합니다. 오래된 문화재가 주는 맑은 기운을 받으며 번잡함에 지친 마음과 감정의 찌꺼기를 날릴 수 있는 시간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