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로를 따라가다 십리대밭교 앞에서 길을 바꿉니다. 길의 이름은 "이휴정길"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이휴정"의 이름을 딴 길이지요. 도심에 어울리지 않은 전통 한옥이 보입니다. 학성 이씨 가문의 월진파가 옛 울산도호부 객사 남문루를 보존해 오늘날까지 이어진 역사가 이곳에 서려 있습니다. 

 

 

 


▲ 이휴정 전경.


시작은 울산도호부에서 출발합니다. 조선시대 울산광역시는 울산도호부였습니다. 도호부란 일종의 행정구역 명칭입니다. 지금의 울산 중구 동헌 바로 옆에는 객사가 있었습니다. 동헌은 관리가 근무하는 일종의 사무실입니다. 객사는 국왕의 위패를 모시고, 출장나간 관리가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 돌벼루.

 

그 객사에는 "학성관"이란 별칭이 붙어 있었습니다. "학성(鶴城)"이란 울산의 옛 명칭이기도 하지요. 남쪽이는 문루가 있었는데, 이는 2층 구조로 된 누각입니다. 아래로는 통로가 있고 위로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 높은 빌딩 아래 전통건물이 이채롭다. 


이 누각에는 태화루라는 현판이 달려있었는데, 지금 울산 태화강가에 있는 태화루와 이름의 유래가 같습니다. 그 옛날 태화사에 있던 누각 현판이 남았는데, 그 현판 글씨가 꽤나 잘 쓴 명필이었다고 전합니다. 아까운 현판 글씨에 이름마저 유래가 있으니 객사 남문루에 걸어 기념한 것이지요. 



▲ 이휴정은 학성 이씨 가문의 성지이기도 하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 시절 누각은 헐릴 위기에 처합니다. 조선시대의 동헌과 객사는 관이 철저하게 관리했지만, 나라가 망한 후 일제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지요. 건물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나선 곳은 바로 울산의 명문가인 "학성 이씨" 가문이었습니다.   



▲ 학성 이씨 충숙공 이예를 기리는 비석. 


가문의 공금을 이용해 이를 사들여 건물 자체를 이전한 것이지요. 지금의 이름인 "이휴정"으로 개명된 것도 이때의 일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1940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이휴정은 학성 이씨 가문의 원진파의 정각의 이름입니다. 



▲ 논어에 나오는 "온고지신"이란 문구에서 딴 온고제.


지금의 이휴정은 개조가 되어 변형된 모습입니다. 2층 문루였던 건물은 1층이 낮아졌습니다. 원래 사방이 뚫려 있었던 2층은 방으로 개조되었지요. 편의를 위해 온돌이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줄기는 그대로라 옛 울산 객사의 남문루를 복원할 때 옛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울산의 가문이 보존한 역사.


태화강 남쪽, 높은 빌딩 사이에 숨은 이휴정에는 이런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것들은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헐려 나가야 했습니다. 우리의 것들은 일체 부정되었지요. 국가가 무너진 뒤에 이 건물을 지탱한 것을 울산의 유서 깊은 가문이었습니다. 



▲ 태화루에서 이휴정으로,, 이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이다. 


태화루에서 이휴정으로,,,, 이름이 바뀌고, 형태도 바뀌었습니다. 옛 울산 동헌 옆에 객사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건물 마당에 서서 한동안 이휴정을 바라봅니다. 이것 역시 역사이며, 후손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 이휴정에서 돌아보는 울산의 역사. 


여기 근대 울산의 역사를 응축한 듯한 건물이 있습니다. 울산도호부 객사 남문루였던 이 건물은 일제에 의해 헐릴 위기를 맞이합니다. 학성 이씨 가문에 의해 보존되어 오늘까지 남겨졌습니다. 울산도호부에서 울산광역시까지,,,, 이휴정에서 울산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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